“러시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서방 경제제재에도 자신만만하던 러시아가 처음으로 경제 위기를 인정했다. 서구 제재와 더불어 유가마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러시아에 ‘제2의 국가 부도’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2일(현지시간)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종전의 1.2%에서 마이너스(-)0.8%로 하향 조정했다. 알렉세이 베데프 경제차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유가 하락이 핵심 원인의 하나”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저유가에 모라토리엄(국가부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만해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권의 경제제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서방권의 경제 제재 강화 으름장에도 푸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존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고유가로 벌어들인 5000억 달러(약 556조원)에 달하는 외환보유고 등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의 자신감과 반대로 러시아 경제는 최악의 역풍을 맞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하지 않고 기존 생산량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유가는 곤두박칠 치고 있으며 이는 곧 러시아 재정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세입의 절반 이상이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에서 나왔다. 유가는 지난 6월 중반부터 40% 가까이 떨어졌다. 유가 하락과 맞물려 루블화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지난 1일 루블 가치는 1998년 러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미국 달러화 대비 루블화 가치가 장중 6.5% 하락한 53.86루블까지 하락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중앙은행은 3일 성명에서 지난 1일 7억 달러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겠다고 공언한지 한 달 만에 원칙을 깬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지난달 러시아 경제가 한해 동안 석유값과 루블화 폭락으로 1000억 달러, 서방의 경제제재로 400억 달러 등 모두 1400억 달러의 비용을 치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말 러시아 신용등급이 투기수준으로 강등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러시아가 저유가 충격을 극복하려고 국부펀드에서 돈을 꺼내쓰기 시작한 것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러시아는‘국가웰빙펀드’에서 약 20%인 160억 달러를 꺼내 유가 하락과 제재 충격으로 허덕이는 거대 국영기업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기금은 저유가 타격으로 3년 전보다 13% 증발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보다 앞서 10월 러시아 신용등급을 ‘Baa1’에서 ‘Baa2’로 강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