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을 하는 이들 중 권력이 크든 작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직언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 또 씻어도 볼 수가 없다. ‘낯부끄러운 아부’만이 판을 치고 있다. 급기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죽은 말인 ‘각하’를 부활시켰다. 가히 박수무당급이다. 참으로 민망한 단어 ‘각하’는 그 옛날 왕이 아닌 정승이나 왕세손을 부르던 경칭이다. 각(閣)은 정승이 집무하던 곳이다. 따라서 이 말을 대통령에게 붙인 것은 지위를 격하시킨 셈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조선시대 신분에 따른 호칭은 ‘폐하(陛下·황제)-전하-저하-합하(閤下)-각하’ 순으로, 각하는 대원군보다도 밑이기 때문이다.
‘폐하(陛下)’는 황제에 대한 존호다. ‘폐(陛)’는 ‘대궐 섬돌’을 뜻하는 말로 신하들이 섬돌 밑에 서서 우러러보게 되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말 대한제국 승격 이후의 고종, 순종 황제에게만 쓸 수 있었던 호칭이다. 두 황제를 제외한 모든 임금은 ‘전하(殿下)’라 칭했다. 동양에서 황제가 임명하거나 인정해준 제후국 왕이나 황태자, 왕태자, 영주 등에게 썼으니 우리로선 자랑스럽지 못한 칭호다. 그 아래 ‘저하(邸下)’는 왕세자나 황태손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저(邸)’는 ‘집’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인의 집보다 땅을 돋워 높게 지은 귀인의 집을 의미한다. 저하 밑의 ‘합하(閤下)’는 정일품 벼슬아치와 대원군을 높여 부르던 말이다.
문제의 ‘각하(閣下)’는 합하 아래로 왕세손과 정승 등 특정한 고급관료를 이르는 경칭이다. 이 외 각하는 우리 관료가 중국 대신에게 글을 쓸 때 사용하던 말이다. 그런데 자유당 시절 권력의 상징어로 부각하면서 ‘각하’는 아첨의 호칭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했던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말이 유행한 기억도 새롭다. 각하가 절대권력의 상징어로 떠오른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그는 ‘각하’ 호칭을 오직 자신만으로 제한했다. 이는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졌다. 이후 ‘보통사람’ 이미지를 강조한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각하’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금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들어 ‘각하’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각하’의 재등장은 분명 역사의 퇴행이다. 대통령에 대한 호칭은 ‘대통령’으로 충분하다. 독선적이고 아집이 강한 독재자를 상대로 사기를 친 재단사와 권력에 굽실거리며 진실을 외면한 관료들을 향해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진실을 말한 것은 어린아이였다. 아첨을 좋아하는 이들이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