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에 첫선을 보인 꿈새김판에는 그동안 여러 가지 말이 올랐다. ‘보고 싶다. 오늘은 꼭 먼저 연락할게’라고 하더니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마지막 한 분까지 세월호 실종자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합니다’라고 빌었다. 연말에는 힘든 일을 견딘 사람들을 ‘토닥토닥’ 단 네 글자로 위로해 주었다. 이어 이번 글이 등장했다.
그런데 긴급 이의가 있다. 토씨를 ‘가’로 한정하고 보니 괄호 안에 넣을 수 있는 말이 급(!) 제한된다. 예컨대 머리나 두뇌를 넣을 수는 있지만 머리카락이나 머리칼처럼 받침이 있는 단어는 넣을 수 없다. 당신의 귀나 귀지, 코나 코딱지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의 눈이나 눈물, 입이나 입술은 좋아할 방법이 없다. 다리나 배는 좋아할 수 있지만 발과 가슴은 절대로 안 된다(잘못하면 큰일 난다).
앞에 한 말 중에서 귀를 좋아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말이 가능하기는 할까? 어떤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경청과 소통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Happy new Year!”를 “Happy new Ear!”라고 바꿔 쓰던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귀를 좋아한다는 말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좀 어색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은’과 ‘는’을 배제한 건 아주 잘 한 건데, ‘가’만 넣은 것은 잘못이다. ‘당신의 ( )가(이) 좋아요, 그냥’, 이렇게 두 가지를 다 써놓아야 했다. 아이들 시험문제도 그렇게 낸다. 그래야 나는 당신의 미소, 당신의 재치, 당신의 유머, 당신의 용기,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당신의 친절과 성실, 사랑, 보살핌, 눈빛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다못해 당신의 집안이나 돈 부동산이 좋다는 말도 슬그머니 할 수 있지 않겠나?
꿈새김판의 취지를 뻔히 알면서 왜 이렇게 따지고 비트느냐고? 그냥 좋다고 말해 보자는 건데 골치 아프게 그러지 말고 그냥 좋은 걸 생각해 보시라고? 이 세상에 그냥 좋은 게 뭘까? 그런 게 얼마나 있을까? 언제나 애틋하고 그리운 엄마, 마음을 주고받게 된 그녀의 첫 편지, 창문을 여니 눈에 가득 차는 첫눈, 일어나 걸으려고 애쓰는 아기, 아직 눈도 못 뜨고 곰실거리는 강아지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예쁜 풀꽃, 어린 짐승들 다 제자리 찾아갔는지 살피느라 서산에 걸려 있는 해, 애달픈 그리움에 뭍으로 뭍으로만 밀려오는 파도, 이런 것들?
그런데 이렇게 그냥 좋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뭐가 좋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하니 그게 힘든 일 아닌가? 좌우간 각자 써 넣어 보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