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계 자금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국내 금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미 대부업과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 시장을 잠식한 이들 아시아계 자본은 경기침체 지속에 따른 구조조정과 금산분리에 묶인 국내 자본이 주춤한 사이 이제 은행과 증권까지 영역을 넓히며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 대부업 이어 저축은행 점령… 증권까지 영토 확장 = 일본계 자본은 대부업계를 장악한데 이어 최근에는 저축은행과 캐피탈, 보험과 증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 업계는 최근 들어 사실상 일본 자본이 장악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저축은행의 자산 비중은 전체의 19.8%에 달한다. 일본계 자본이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시장에 나온 알짜 저축은행들을 대거 인수한 결과다.
일본계 금융기업인 SBI홀딩스가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등을 인수해 만든 SBI저축은행은 자산규모 3조8000억원으로 동종업계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SBI저축은행은 최근 제1금융권인 우리은행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SBI금융그룹이 총자산 21조원의 일본 최대 온라인 금융회사인데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 진출해 국내 금융시장의 사정에 밝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대부업과 채권회수 등 소비자금융에 특화된 일본계 제이트러스트도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 업계 5위인 친애저축은행(자산 1조1432억원)을 만들었고 오는 3월 친애저축은행과 JT저축은행을 통합할 예정이다. 제이트러스트는 또 최근 SC저축은행도 인수했으며 아주캐피탈의 우선협상자로도 선정돼 인수를 앞두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일본계 자본의 힘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현대증권 매각 작업에서도 일본계 금융그룹 오릭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오릭스는 푸른2와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해 자산 1조1159억원의 OSB저축은행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LIG손해보험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대부업계는 이미 일본계 자금이 과반의 자산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총대부액이 이미 토종 업체들의 규모를 넘어섰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말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총 4조9700억원(56.2%)으로 토종 업체들의 3조5600억원(40.2%)을 추월했다.
아프로파이낸셜대부가 2조원이 넘는 대부잔액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역시 일본계인 산와대부가 1조원대 초반을 기록하며 2위를 기록 중이다.
◇중국, 2~3년 새 자산 급성장… 국내 진출 러시 = 일본계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토 확장을 하는 사이 최근에는 중국 자본도 국내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중국계 은행들의 경우 국내 저금리 장기화와 이에 따른 위안화 예금의 폭발적 증가를 등에 업고 최근 2~3년 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만의 1위 증권사인 유안타 증권은 지난해 동양증권을 인수해 현재 영업 중이다. 중국의 푸싱금융그룹은 굵직굵직한 증권·보험사 인수전에 나서고 있다. 푸싱금융그룹은 지난해 LIG손해보험과 KDB생명보험 인수전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현대증권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을 2조원 넘는 금액에 사들인 중국 안방보험그룹은 우리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우리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방보험그룹은 지난해 우리은행 경영권 예비입찰 당시 유일하게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에는 중국공상은행이 광주은행의 인수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계 자본의 공세는 양국의 여러 조건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4000조원이 넘는 외화를 보유한 데다 정부가 해외투자 확대 정책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한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고,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도 개설해 투자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위안화 예금도 급속히 늘어 국내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실제 중국계 은행 한국 지점의 자산은 2012년 14조3800억원에서 2013년 약 27조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말에는 5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국내 지방은행이나 중소은행들과 맞먹는 규모다.
아베노믹스로 유동성이 넘치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된 일본에서는 1∼4%대 낮은 조달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뒤 국내에서 10∼20%대 이자를 받을 경우 손쉽게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