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오지(旬五志)’는 잡록이나 평론집으로 분류되는 저작물이다. 1678년(숙종 4)에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보름 만에 완성했다. 그래서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한다. 그는 서문에 “병들어 누워 지내다가 예전에 들은 이야기와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관인(官人)문학에서는 흘리기 쉬운 우리 역사와 문학에 관한 일을 기록한 점에 의의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시를 논한 ‘소화시평(小華詩評)’도 썼다.
그러나 순오지는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자구가 틀리거나 빠진 게 많다. 이 책에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는 말이 나온다. 봄추위와 노인의 건강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춘화노골(春花老骨)이나 “가을 날 더운 것과 노인 근력 좋은 것은 못 믿는다”는 속담도 같은 뜻이다,
조재삼(1808~1866)의 백과사전류 저서인 ‘송남잡지(松南雜識)’에도 이 말이 나온다. 그는 “봄추위, 가을더위, 노인의 건강 세 가지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으로, 본디 구양 수의 말”[春寒秋熟老健三者 不久長之物 本歐陽之語]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양 수(歐陽脩·1007~1072)는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이다.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1897~1989)은 동료인 한결 김윤경(1894~1969)이 갑자기 사망하자 1969년 2월 6일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춘한노건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로 1초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수명이로다. 아아 안타깝도다, 형의 졸서(猝逝)여”라고 애도했다.
‘때마침 봄추위에 황사현상. 춘한노건은 불구장(不久長)이라 며칠만 참으시도록’ 이런 촌평도 40년 전의 신문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말과 반대로 춘한노건을 “봄추위에도 노인 건강은 여전하다”고 바꾸면 어떨까? 날씨가 돌연 겨울로 돌아갔지만 조금만 더 참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