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스커더의 만남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리아펀드의 펀드매니저로 만난 스커더는 나의 투자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회사다. 주식은 사고파는 기술이 아니라는 철학, 마켓 타이밍은 잘못된 투자 방법이라는 것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교훈들을 스커더에서 배웠다.
안타깝게도 입사한 지 15년 만에 회사가 주릭(Zurich)이라는 스위스 보험회사를 거쳐 도이치은행에 매각됐다. 스커더의 유능한 투자 인력이 전원 사임함에 따라 나도 스커더와 코리아펀드를 떠나게 됐다.
나는 특히 두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스커더의 간판 펀드매니저 윌리 홀저(William Holzer)다. 그는 특히 한국을 좋아했다. 자신이 운용하던 스커더 글로벌 펀드에 일본 비중을 1% 담고 한국 비중을 7% 담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로부터 장기 투자 철학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또 한 명은 나의 보스이자 코리아펀드를 만든 닉 브랫(Nicholas Bratt)이다. 닉으로부터는 항상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고 또한 겸손을 배웠다.
스커더의 풀 네임은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클락(Scudder Stevens and Clark)이다. 약 100년 전에 회사 이름과 동일한 세 사람이 만든 세계 최초의 자산운용 회사다. 처남 매부 관계였던 이 세 사람이 설립 당시 세운 두 가지 원칙을 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원칙은 회사의 주식을 모든 직원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원칙은 자신들의 자녀가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가장 훌륭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능력 있는 직원이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철학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적인 리서치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장기투자의 틀을 만들었다.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장려하는 회사였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기업 방문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고도 한다.
스커더는 1984년 코리아펀드를 처음 출시해 뉴욕거래소에 상장시킨 회사로도 알려져 있다. 캐나다에 투자하는 것조차 낯설었던 당시에 코리아펀드를 생각한 것은 스커더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코리아펀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나라 펀드 탄생의 시금석이 되었다. 아르헨티나펀드, 타이펀드, 필리핀펀드 등 각 나라 펀드의 탄생은 코리아펀드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면서 스커더는 한국에도 똑같은 운용 철학을 적용했다. 기업 방문을 처음으로 시도했고 장기 투자철학을 실현했다. 내가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던 15년 동안 회전율이 15%를 넘지 않았다. 즉 평균 보유기간이 7년 이상이다. 수익률은 코스피 대비 연평균 11% 초과수익을 냈다.
스커더 사장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좋은 자산운용 회사는 고객의 이익을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 회사의 투자 철학이 확고하고 그 직원들이 행복해야 한다. 나의 작은 소망은 많은 사람들의 노후 준비를 도와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나에게 투자의 현명함을 일깨워준 스커더 같은 회사를 한국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한 발짝씩 좋은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는 메리츠자산운용과 그 꿈을 실현 가능하게 해준 직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