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췄는데도 시중의 자금이 잘 돌지 않고 물가가 계속 떨어질 때, 중앙은행이 채권 등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정책이다. 즉 중앙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늘려 시중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다. 새누리당의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발행채권과 일반은행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인수해 한계기업과 하우스푸어를 지원하자는 방안이었다.
양적완화는 제로 금리의 원조인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1999년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으나 물가하락과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자 2001년 3월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일본은 이후 최근까지 다양한 양적완화 정책을 수없이 사용했으나 경기회복은 더디고 디플레 탈출은 어려운 상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채택했다.
양적완화를 실시해도 물가가 계속 떨어지고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금리를 제로 이하로 떨어뜨리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2016년 들어 유럽의 일부 국가와 일본이 부분적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반면 양적완화를 통해 돈이 돌면서 경기가 풀리고 물가가 조금씩 오르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제로 금리 정책에서 벗어나 정상적 금리 정책 체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11월 기준금리를 0~0.25%로 낮추면서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으며, 2010년 8월과 2012년 9월에는 양적완화 규모를 대폭 늘렸다. 이러한 정책 등에 힘입어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자, 2014년부터 테이퍼링(tapering)이라는 이름으로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 나갔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 미국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7년 이상 지속되었던 제로 금리 시대를 벗어났다. 올해 1~2차례 추가적 금리인상을 통해 금리정책을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의 현재 정책금리는 1.5%로 제로 금리까지는 아직 상당한 여유가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에 자금이 부족해 경기가 나쁘다고 판단하면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정책금리가 제로가 되기 전에 어떤 특정 부문에 자금을 보다 많이 공급하는 것은 정책금융이다. 물론 정치적 의도가 많이 있다면 정치금융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과거 개발시대인 1980년대까지는 많은 종류의 정책금융이 있었다. 수출지원금융이 대표적이고 에너지절약시설자금, 기계공업육성자금, 수출산업설비자금, 주요 원자재 수입금융 등이다. 이러한 정책금융에 대해 과거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한 자금 지원이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주장한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채권을 한국은행이 인수하는 것은 양적완화가 아니라 과거의 정책금융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앙은행의 자금 지원이 있는 정책금융은 금융의 중립성과 효율성 강화를 위해 점진적으로 축소되었다. 현재는 한국은행이 은행들의 수출기업과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만 일부 남아 있다. 새누리당이 한계기업과 하우스푸어 등에 대해 특별히 자금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개념이 혼란스러운 양적완화 대신 새로운 정책금융의 신설을 제안하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금융의 자금원으로 정부 예산, 특별기금, 한국은행 발권력 중에서 어느 방안이 최적인지도 제시해야 한다. 한계기업과 하우스푸어 등을 위한 정책금융을 못 만들 이유는 없다. 다만 정책 추진은 투명하고 경제논리에 맞게 이뤄져야 하고, 그 자금을 최종적으로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지도 꼭 밝혀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