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규제 개혁은 왜 힘드나?

입력 2016-06-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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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경제관료를 역임한 분들을 만나보면 한 가지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퇴임 후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여 ‘규제개혁’을 외친다는 점이다. 평생 공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퇴임 후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강연회에서, 또는 신문 기고를 통해, 혹은 저서를 통해 규제개혁을 외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만큼 본인들 스스로도 우리나라에 규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얘기도 되지만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이토록 규제개혁이 필요함을 평생 느끼고 살았다면 왜 공직에 있을 때는 규제개혁을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왜 그러할까?

역대 정부치고 규제개혁을 외치지 않은 정부가 없다. 현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게 규제개혁을 국정의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또한 역대 어느 정부도 규제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씁쓸한 사실이다.

왜 규제개혁은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공무원 사회 자체가 ‘규제’로 먹고 살아가게끔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공무원 사회 자체의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 설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 정치인이 규제개혁을 아무리 소리 높여 외친들 공무원 사회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공무원은 평생 박봉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도 공무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규제’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특정 업종의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법률상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규제가 완화되었다고 하자. 이를 해당 관청에 종전과는 달리 신고만 해서 등록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것은 순진하다. 말로만 등록제로 바뀌었을 뿐, 실제로는 관에 사전 협의를 해 내부적인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서류 자체를 아예 받아주지 않는다.

그럴 거면 왜 등록제로 바꾸었냐고 따지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이 또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해당 업종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회사가,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갑’인 공무원의 심기를 감히 건드리는 항의를 할 수가 있겠는가? 아예 장사를 관둘 생각이 아니면 그대로 따라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러면 공무원들은 왜 이처럼 전 국민이 싫어하는 ‘규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공무원의 삶은 한마디로 ‘사고’만 치지 않으면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어 있다.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산하기관의 장으로 옮겨 그때부터 본격적인 황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거액의 연봉에 비서, 기사까지 두는 안락한 생활이 끝나면 또 공기업으로 옮기거나 혹은 로펌으로, 대학으로 옮겨 영향력 있는 삶을 이어간다. 그때쯤이 자연스럽게 ‘규제개혁’을 외쳐야 할 시기다. 그래야만 후배 현직 관료들로부터 주목도 받게 되고, 여론의 기대치와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을 때 과감히 소신 있게 규제개혁을 하면 안 될까? 공무원 사회의 암시적인 룰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잘못해서 규제개혁의 결과 무슨 사고라도 터지면 자신은 그야말로 끝장이 날 위험이 있다.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물론 그 결과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 징계라도 받게 된다면 공무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연금 박탈이란 가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현직 공무원들로서는 규정을 완화하면 엄청난 위험이 있는 반면, 규제를 잘 지켜나가면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는 식으로 근본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으니, 이러한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실패가 예고된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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