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9년 6월 17일(음력 5월 8일)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가 사망했다. 임진왜란 중인 1595년 12월 7일 태어난 인조는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인조(仁祖)처럼 이름과 실제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왕이 있었을까. 묘호에 유교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어질 ‘인(仁)’이 있지만 인조만큼 인자하지 못했던 왕도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인조는 능력도 없고 국제 상황을 가늠하는 통찰력도 없어 조선은 두 차례의 호란을 겪고 자신은 ‘삼전도의 치욕’을 맛봐야 했다. 게다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족까지 죽인 잔혹함으로 인해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암군(暗君)’으로 평가받는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쳐도 소현세자 일가가 풍비박산 난 것을 생각하면 권력을 위해 아들마저 버린 비정한 아버지 인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는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몸값을 주고 구출해 농사를 짓게 했다. 그리고 청나라와 조선의 무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인질로 있으면서도 막대한 이문을 남겼다. 그러나 인망이 높고 청나라 고위 관리들과도 친분을 쌓은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사망해 지금까지도 독살설이 돌고 있다. 물론 정사에는 인조의 개입이 나타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세자의 시신이 전부 검은빛이고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이 흘렀다”고 독살을 의심할 만한 정황을 기록해 놓았다.
심지어 인조는 며느리 강 씨가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사약을 내린 것은 물론 어린 세 손자들까지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결국 경선군과 경완군이 사망하게 된다. 권력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하는 일이었다. 인조는 무능한 왕이었지만 그가 인자하기라도 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