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시장의 기대를 뒤로하고 기준금리와 자산매입 한도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파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기로 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영란은행은 14일(현지시간)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현행 0.5% 수준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9명의 정책 위원 중 8명이 찬성했다. 1명의 위원만이 0.25%포인트 인하를 주장했다. 자산매입 한도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현행(3750억 파운드)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시장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에 따른 경기 둔화를 막고자 영란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앞서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인 지난달 31일 “경제 성장 전망이 악화됐다”면서 “올여름 일부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회의에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란은행이 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로 내릴 가능성을 80%로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영란은행은 즉각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기보다는 브렉시트의 경제적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후 행동에 나서는 쪽을 택했다. 즉 브렉시트 영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경제지표를 수집해 이를 분석한 다음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내놓겠다는 것. 실제로 영란은행은 “위원회가 다양한 양적 완화 수단들과 이 수단들의 조합을 논의했다”면서 “추가적인 경기부양 조치들의 정확한 규모는 향후 나올 새로운 경기지표들에 기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례적으로 8월 회의에서 통화정책이 완화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영란은행은 회의록에서 “대다수 위원이 통화정책이 8월에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향후 경기 전망과 인플레이션 전망을 담은 영란은행의 분기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내달 4일 발표된다. 이에 따라 8월 영란은행은 금리인하와 자산매입 규모 확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테리사 메이 신임 총리의 새 내각 구성으로 재무장관이 교체되는 시기를 감안해 영란은행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미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전 영국 재무장관에 필립 해먼드가 조지 오스본의 후임자로 지명됐다. 전문가들은 영란은행과 영국 정부가 정책적 공조로 경기 부양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유럽 주요 증시는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승세로 마감했다. 영란은행이 예상을 깨고 금리를 동결했지만 내달 완화책 도입을 강력히 시사한 영향이다. 이날 달러 대비 파운드 가치는 한때 1.35달러까지 급등하며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치러진 6월 말 이후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