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프랑스 전투와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멸의 업적을 남긴 전설적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1919. 1.29~2005. 12.29)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운동가 김순권(1886~1941)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옥은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3개국(한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올해 광복절 71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프랑스의 두 마을 브뤼에르와 비퐁텐 해방에 앞장섰던 김영옥을 비퐁텐의 노인들은 ‘까피텐 김(김 대위)’으로 기억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사업가로 변신했던 그는 6·25전쟁이 터지자 조국을 위해 재입대해 중공군을 상대로 ‘유럽 불패신화’를 재현하며 중부전선 북상의 주역이 됐다. 주한미군 군사고문으로 대공 미사일부대 창설을 건의하는 등 호크 미사일부대 창설의 산파 역할도 했다.
31년간 입었던 군복을 벗은 김영옥은 부상 후유증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만일 내가 살아남는다면 평생을 내가 속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바치겠다’는 몬테 카시노 전투(1944년) 때의 다짐을 이행하다가 생을 마무리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고아 500명을 돌봤으며, 전역한 뒤에도 미국의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고아, 입양아,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여생을 바쳤다. 또한 노근리 진상조사단에 참여하는가 하면,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됐던 442연대를 기념하기 위한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재단’을 설립,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며 활동했다.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영옥중학교와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가 있다. 미국 최고 전쟁영웅 16명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