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대 그룹 계열사 CEO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유화적이면서도 뼈가 담긴 모두발언을 쏟아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 위원장이 이날 재벌들을 향해 운을 뗀 지칭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4대 그룹을 향해 날선 감시를 천명한 경쟁당국 수장으로서는 다소 압박 수위를 낮춘 태도로도 읽힌다.
최근에도 ‘몰아치기식 개혁은 안 된다’며 기업들의 자유로운 변화에 우선권을 주는 분위기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뼈가 담긴 강한 의미도 담아냈다.
김 위원장은 “한가지 분명한 아쉬움이 있다” 며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대기업집단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달라졌다. 각 그룹의 경영전략, 의사결정구조도 진화해야 하지 않냐”고 꼬집었다.
그는 “대기업, 특히 소수의 상위 그룹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다수 국민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진 것은 뭔가 큰 문제가 있다”며 불투명한 대규모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구조를 지목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혹시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정확하고도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또는 정보는 전달됐는데 적기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4대 그룹의 전문경영인들과 대화에 나선 이유를 피력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새로운 사전규제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 판단에 부담을 주거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노력과 성과를 보일 경우 긍정적인 지원 등을 약속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릴 것”이라며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되는 만큼 공정위 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부처와 기업인들이 만나 협의하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협의 내용은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시점에 사회와 시장에 알리는 방안도 고민할 것”이라면서 “모든 과정은 기업인들과 충실히 협의하고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겠다. 결코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