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8.2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언론들의 평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인 논조는 강남권 재건축 침체, 수도권 신규 분양시장 호조다.
전반적으로 거래가 많이 줄었으나 활기가 넘쳤던 지난 1~2년보다 못하다는 것이지 거래 절벽 상태까지는 아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매매는 위축되고 전·월세 시장은 호조세다. 전세가격이 오르고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했으니 가격 하락은 당연한 현상이다.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여지가 많아 매기도 옅어졌다. 시세보다 싼 급매물이 나와도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이런 장세는 상당기간 지속되지 않겠나 싶다.
투자 수요를 차단하는 자물쇠가 여러 개 달려있어 섣불리 덤볐다간 낭패를 보기 딱 알맞다. 잘 못 들어갔다가는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것은 물론 채산성이 떨어져 오히려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반대로 아파트 분양시장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8.2 대책 이후 처음 분양에 나서는 서울 신반포 센트럴자이 견본주택에는 연일 방문객이 북적댄다. 감시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이동 중개업소로 불리는 떳다방이 등장할 정도이니 그 인기도를 가늠케 한다.
정부가 분양가 인하를 압박해서인지 당초 예상보다 300만~400만원 가량 낮춰 3.3㎡당 평균 분양가는 4250만원이다. 일단 당첨만 되면 3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가격이 최고점에 달할 때 투자한 사람은 예외다.
신규 아파트 시장이라고 다 호황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시세차익이 없는 곳은 줄줄이 미분양이다.
분양을 받아도 이득이 별로 없으면 구매 수요는 줄어들게 돼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 여파가 심할 때 서울을 비롯한 인기 지역에서도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벌어졌다. 분양가를 대폭 할인해도 팔리지 않았다.
기존 아파트 가격이 자꾸 떨어지고 있어 신규 분양분에 대한 매력이 없어져서 그렇다.
8.2 대책의 영향력은 이 정도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나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은 규제 강도가 너무 세다고 아우성이지만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진보성향 관계자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미약하다는 주장을 편다.
다들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조가 다르다.
하지만 규제를 더 강화하거나 완화해도 안 된다. 이 정도면 딱 알맞다.
지금보다 위축되면 금융위기 때 경험했던 악몽이 되 살아날지 모른다. 집값이 떨어지면 거래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가격은 더 하락해 거래 절벽 사태를 맞는 악순환의 고리 말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 자체가 돌아가지 않아 또 다시 주택시장을 부추기는 정책을 만들 명분이 생긴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게다.
시장은 절대로 평준화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르는 곳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하락하는 곳도 생긴다. 모든 집값을 떨어지게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다 같이 죽자는 얘기다.
오히려 8.2 대책은 보완할 게 많다.
먼저 유예기간을 주지 않고 소급 적용한 부분은 즉시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8.2 대책 발표일 전에 이미 분양 계약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대출제한과 1가구 1주택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아파트에 당첨돼 계약금을 건넨 경우는 취득으로 봐야 옳다.
한창 공사 중이어서 잔금을 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수요자들은 당시 시책을 보고 아파트를 분양받았거나 집을 샀는데 정부가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규정을 바꾸면 곤란하다.
대출이 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이제 와서 불가능하다고 하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말이다.
기존 주택의 거래도 마찬가지다. 일단 계약금이 건너간 주택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계약할 때 잔금 일정 등의 자금계획이 서 있어 금방 돈을 조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책 발표일 전에 잔금 납부나 등기를 완료해야 만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으니 관계자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이번 대책의 가장 큰 맹점은 퇴로를 열어주지 않았다는 거다. 대책에 따른 대비를 할 수 있게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줘야 했다.
범죄 집단 소탕작전을 벌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몰아붙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도 정부의 섣부른 대책으로 수많은 수요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대출이 안 돼 어렵게 분양받은 아파트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도 않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 아예 분양권을 넘겨야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는 정부가 강력히 규제키로 한 분양권 전매를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수요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정부 요로에 부당성을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얘기다.
대책 발표 이후 지적된 부작용을 곧바로 시정했더라면 정부의 모양새가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이라도 사태를 분석해 하루라도 빨리 선의의 피해자 구제방안을 마련할 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