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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정미소 큰 솥에서 옥수수를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을 그대로 들고 오셔서 딸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시곤 했는데 그 옥수수를 먹는 볕바른 가을 마루에 앉아 곧잘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하늘은 높고 푸르러 가을이 마당을 가득 채운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스무 살 때 진주시장에서 지금의 어느 기업 창업자와 포목장사를 하셨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 천 번은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 것, 그러나 참 많이도 들었고 아버지는 참 많이도 그 기억을 행복하게 말하는 것을 즐기셨다. 자신의 상술(商術)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사람, 그때 내 덕분에 부자(富者)의 길로 들어섰다”고 눈을 지그시 감으시면서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비단장사는 ‘즐거운 속임수’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랄한 속임수’는 색이 검지만 즐거운 속임수는 분홍빛이라고 얼굴에 환한 미소로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즐겁게 이야기하셨다. 비단을 사는 손님의 흥분을 잘 이용하고 실제로 비단의 장점을 잘 이해시키면서 엄지손가락만큼의 속임수를 즐겁게 사용하는 장사치야말로 고수(高手)라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익을 보면서 손님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업가는 아버지를 최고의 장사치라며 “너는 평생 내 옆에 있어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고 늘 마지막엔 우수에 잠기시곤 했다. 그분과의 인연은 아버지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끝났고, 아버지는 그 ‘즐거운 속임수’를 당신 스스로에게 적용하면서 겉은 번드레하지만 속은 아픈 사람으로 일생 사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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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대로 과연 아버지의 인생은 개떡이었을까. 가을이 되면 마당이 넓은 한옥집을 그리워하며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신 아버지이지만 내가 봐도 아버지의 인생은 실패 쪽이 더 가깝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셨던 천생(天生) 시인인 아버지는 사랑은 해도 헤어질 줄을 몰라 인생은 더 꼬이고 복잡해졌으며 어머니의 인생을 평생 오그라들게 하였다.
말만은 비단실이었다는 것도 나는 안다. 자신의 실패를 넘어서려고 타고난 언변을 구사하면 모두 혹했던 그 말솜씨는 비단을 능가하게 부드럽고 논리적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은 억새풀처럼 살을 베이고 살았다. 일생 일기를 쓰신 아버지의 그 감성은 아버지의 마음도 인생도 달래진 못했던 것 같다. 사람도 여자도 딸도 많았지만 아버진 일기장 종이에만 자신을 쏟으며 일생을 마감하셨던 것이다. 외로움은 아버지에게 가장 무서운 호랑이였을 것이다. 외로움을 가능한 한 피해보려고 찾았던 손[手]들은 실상 아버지의 외로움을 더 아프게 했던 싸늘한 바람들이었던 셈이다.
“삿갓 하나 쓰고 돌아다니면 좋겠다.” 첫아이를 낳고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진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혼잣말을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의 방황을 그땐 나도 개떡으로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아버지의 외로움이 이 가을 비단실처럼 내 마음을 감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