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기업들이 관계사를 활용해 동일한 의약품을 추가로 장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장 판매 계획이 없는데도 허가 받는 경우도 많다. 제약사들은 사업다각화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관계사 주력 의약품의 철수나 약가인하를 대비한 ‘보험용’ 목적이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이 많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동아제약은 최근 전문의약품 2종을 허가받았다. 지난 7월 알레르기비염치료제 ‘투리온’을 허가받은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항혈전제 ‘동아제약클로피도그렐황산수소염’의 시판승인을 받았다. 투리온은 ‘타리온’의 제네릭이며 동아제약클로피도그렐황산수소염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플라빅스’다. 동아제약의 전문의약품 허가는 지난 2013년 설립 이후 처음이다.
4년 전 각 사업의 전문화를 목표로 회사를 쪼갰는데도 일반의약품 업체가 전문의약품을 허가받은 것이다. 동아제약은 전문의약품 판매를 위한 사업부나 영업인력이 없다.
회사 측은 “제네릭 의약품을 당장 판매할 계획은 없지만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허가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관계사 의약품의 철수 등을 대비한 ‘보험용’ 성격으로 동일 성분의 제품을 미리 장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동아제약이 허가받은 2개 제품 모두 동아에스티가 동일 성분으로 판매 중이다. 동아에스티는 투리온의 오리지널 제품 타리온과 ‘클로피도그렐’ 성분의 제네릭 ‘플라비톨’을 판매 중이다.
투리온의 경우 타리온의 후속 제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허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동아에스티는 미쓰비시다나베로부터 타리온의 판권을 확보, 판매 중인데 올해 말 타리온의 판권 회수가 유력하다. 만약 타리온의 계약 만료로 원 개발사에 판권을 되돌려주면 동아에스티 입장에선 매출 공백이 불가피하다.
타리온의 판권 회수 이후 동아제약이 허가받은 투리온을 동아에스티가 판매하면서 매출 공백을 최소화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동아에스티가 타리온 제네릭 허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제약사는 동일 성분의 제품을 한 개만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으로부터 의약품을 도입할 경우 계약기간에는 동일 제품의 허가를 금지하는 조항을 계약에 반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동아제약 측은 “현재 투리온의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동아제약클로피도그렐황산수소염’도 동아에스티의 플라피톨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허가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타리온과 플라비톨 모두 동아에스티의 간판 제품으로 지난해 각각 232억원, 21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제약사들이 관계사를 활용해 동일 제품을 허가받는 전략이 확산되는 추세다.
보령제약은 지난해 두 개의 고혈압약 성분(피마사르탄+암로디핀)으로 구성된 ‘듀카브‘와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투베로‘(피마사르탄+로수바스타틴)를 허가받았는데, 보령바이오파마도 동일 성분의 ’카브핀‘(피마사르탄+암로디핀)과 ’로카브‘(피마사르탄+로수바스타틴)을 허가받았다. 듀카브와 투베로는 보령제약의 간판 제품 '카나브'를 활용한 복합제다. 보령제약은 카나브와 함께 듀카브와 투베로를 '카나브패밀리'로 명명하고 간판 제품으로 육성 중이다.
업계에서 카브핀과 로카브 모두 듀카브와 투베로의 예상치 못한 악재를 대비해 장착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예를 들어 보령제약의 듀카브가 약가 사후관리 등을 통해 약가가 큰 폭으로 깎여 수익성이 낮아지면 보령바이오파마의 카브핀이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미 보령제약은 유사한 전략으로 효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2년부터 '아스피린' 성분의 보령아스트릭스를 팔아오다 2015년부터 돌연 생산을 중단하고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의 판매를 시작했다.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는 보령제약에서 생산하는 보령아스트릭스의 '쌍둥이' 제품이다.
보험약가를 올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보령제약은 보령아스트릭스를 43원의 보험약가로 판매했는데, 2015년 이후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를 73원에 등재받고 대신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사 제품의 보험약가가 낮다는 이유로 허가를 받납하면 일정 기간 동안 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 없지만 다른 업체의 비싼 제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것은 제약이 없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는 2015년 187억원, 지난해 197억원의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기존 보령아스트릭스의 매출을 뛰어넘었다. 보령제약은 의사단체 등으로부터 '편법 약가인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실리를 챙겼다.
대웅제약의 지주사 대웅은 항혈전제 ‘클로다운’, 위장약 ‘알비스D' 고혈압치료제 ‘대웅올메사탄’·‘대웅올메사탄플러스’ 등의 허가를 받은 상태다. 이중 대웅올메사탄과 대웅올메사탄은 처방실적이 없다. 대웅제약은 지난 2002년 분할 당시 “투자전문회사와 사업전문부문을 분리해 사업부문이 독립적으로 고유 사업에 전념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를 담당하는 지주사가 의약품 허가를 받은 셈이다.
제약사의 관계사가 동일 제품을 허가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회사 분할이나 신설 당시 공통적으로 표방한 사업 전문화 취지가 훼손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