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캐스트가 13일(현지시간) 21세기폭스 인수(M&A)에 650억 달러(약 70조700억 원)를 제안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가 보도했다. 컴캐스트와 월트디즈니가 폭스의 엔터테인먼트 자산과 해외 자산 인수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컴캐스트가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컴캐스트는 디즈니가 제안한 액수보다 19% 높은 수준으로 인수가를 제시한 데다 전액 현금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폭스 측은 “제안을 받은 게 사실이고 검토할 것”이라며 “7월 10일에 열릴 주주 총회를 연기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폭스는 작년 12월 디즈니의 524억 달러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당국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컴캐스트의 제안은 미국 연방법원이 미국 2위 통신업체 AT&T의 타임워너 인수를 승인한 다음 날 나왔다. 미국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은 전날 미국 법무부가 지난해 낸 AT&T의 타임워너 인수 차단 명령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양사는 2016년 10월 합병에 합의했지만, 미국 법무부가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하면서 절차가 지연됐다. 법원은 “법무부가 두 기업의 합병이 유료 TV 채널 고객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이용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합병을 아무런 조건 없이 승인한다”고 판결했다.
폭스를 두고 벌이는 M&A 전쟁은 넷플릭스부터 페이스북을 포함한 미디어와 통신, 방송사 간 각축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미디어 업계는 네트워크와 기술, 콘텐츠 사업을 통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 정보를 결합해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고 시청자에게는 다양한 스트리밍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T&T와 HBO과 CNN, 워너브라더스스튜디오를 보유한 타임워너의 합병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업계는 향후 5년 안에 3~4개의 재벌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최종적인 상태’에 도달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들은 이날 “이렇게 수직적으로 통합된 대기업들은 서로 경쟁하고, 또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컴캐스트와 디즈니도 해외사업 확장, 새로운 콘텐츠와 네트워크망 확보 등 중대 과제가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흔치 않은 대규모 M&A 기회가 생기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컴캐스트는 유료 시청 소비자를 잃고 있는 터라 폭스의 해외 자산 인수를 통해 유럽과 인도 등의 국가에서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처지다. 디즈니도 폭스라는 보호막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같은 실리콘밸리 거인들과 경쟁하려면 폭스가 가진 폭넓은 영화사업 부문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두 회사는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2004년 사장일 당시 컴캐스트의 자사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를 막아냈다. 디즈니와 폭스가 계약을 맺자 컴캐스트는 올해 초 폭스 계열사 중 하나인 유럽 유료채널회사 스카이에 비공식 제안을 함으로써 두 회사의 거래를 훼방 놓으려 하기도 했다.
이 대규모 M&A 전쟁은 이제 폭스 지분 17%를 소유한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선택에 달렸다. 폭스 지분의 7.4%를 소유한 행동주의 투자자 크리스 혼과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TCI 등은 컴캐스트 편을 들고 있다. 다만 혼은 “머독 일가가 현금 입찰을 받으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 하므로 액수가 적더라도 주식 거래를 선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