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눈물 렌즈 - 너무 두꺼우면 안 되는 세상의 돋보기

입력 2018-08-08 10:21 수정 2018-08-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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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국회의원 노회찬의 죽음에 관해 쓴 한 칼럼에 그가 ‘눈물 렌즈’로 세상을 봤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었다. 칼럼에 따르면 ‘유신 반대 유인물을 돌린 경기고 학생 노회찬’은 그 무렵 씨알 함석헌(1901~1989)을 찾아갔는데, 씨알은 그에게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말해 줬다고 한다. 바로 뒤 문장은 “노회찬은 여성·장애인·비정규직·성소수자와 함께 눈물 흘리고, 힘겨운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에 전력을 다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이다. 안경을 꼈던 그가 안경 렌즈로 본 세상보다는 눈물 렌즈에 비친 세상을 더 믿었던 거라고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2012년 그의 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도 눈물 렌즈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세상 이야기가 들어 있다. “서울 구로구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타고 직장인 강남 빌딩 부근의 정류장에 내린다. 한 달에 85만 원을 받는 투명인간인 이분들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는 이 연설 장면은 그가 죽은 직후 동영상으로 다시 나돌아 여러 사람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눈물 렌즈로만 볼 수 있는 청소아줌마라는 ‘투명인간’ 이야기를 연설에 담았기에 그런 감동이 생성됐을 것이다.

나는 씨알과 노회찬 말고도 ‘눈물 렌즈’로 다른 이의 감동을 자아냈던 사람을 알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1929~ )이다. 예전 공산주의 체코에서 반체제 운동에 앞장섰다가 모든 저서에 대한 판금 및 도서관에서의 퇴출이라는 조치를 당한 그는 결국 1977년 가을, 조국에서 추방된다. 프라하에서 2000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 렌의 30층짜리 아파트 맨 꼭대기에 거처를 구한 그는 그 아파트에서 처음 맞은 아침에 고국의 수도 프라하를 눈물 렌즈를 통해서 본 이야기를 2년 뒤인 1979년에 낸 소설 ‘웃음과 망각의 책’에 써 놓았다.

“나는 지금 그들을 내 망루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멀다. 다행히도 내 눈에 고인 눈물이 망원경 렌즈와 비슷해 나는 그들의 얼굴을 더 가깝게 볼 수 있다. …. 나는 불 켜진 프라하를 배경으로 그들 모두를 본다. 그들의 책이 아직 국가 지하 창고에 처박히기 십오 년 전, 그들이 술병 가득한 큰 탁자를 둘러싸고 유쾌하고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던 모습 그대로 본다. ….”

▲노회찬이 눈물 렌즈로 보았던 6411번 버스 첫 차.
▲노회찬이 눈물 렌즈로 보았던 6411번 버스 첫 차.
그가 눈물 렌즈로 본 고국 풍경이 동료 문인들과 매일 밤 만나 예술과 문학과 조국의 앞날과 동포들의 삶 같지 않은 삶을 논하던 프라하의 술집뿐이었을까. 길가의 돌멩이 하나, 풀꽃 송이 하나도 그의 눈물 렌즈에 모두 잡혀 떠올랐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움의 눈물은 누구에게나 볼록렌즈로 변해 그가 보고 싶어 하는 모든 걸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씨알과 노회찬의 눈물 렌즈와 쿤데라의 눈물 렌즈는 같은 거다. 어디를 보느냐만 다를 뿐, 안 보이는 것, 못 보던 것을 보여주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눈물 렌즈는 누구나 한 벌씩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다만 눈물 렌즈는 너무 얇아도 안 되지만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두꺼우면 눈앞의 것도 제대로 못 본다. 윤곽이 흐려져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노회찬의 눈물 렌즈는 너무 두꺼웠던 것 같다. 조금만 얇았더라면 자신과 주변을 더 명확히 봤을 것이었기에, 마지막이 그처럼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었기에 그렇다.

역사상 렌즈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인물은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일 것이다. 평생 안경 렌즈를 깎아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눈물 렌즈에 대해서도 깊은 사유를 했다. 그 사유의 결론 중 하나는 “감정에 의해서 망동(妄動)하지 않는 것이 윤리학”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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