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내놓은 주주제안 안건이 잇따라 부결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행동주의 펀드가 대주주를 상대로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주주활동 문화가 점점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정기 주총에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안한 총 8조3000억 원 규모의 현금배당 및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대신 이사회 측이 제안한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세이브존I&C 주총에서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홀드코자산운용이 낸 현금배당 및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등 주주제안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강남제비스코 주총에서도 미국 헤지펀드 SC아시안오퍼튜니티가 현금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냈지만, 고배를 마셔야했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국내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상법상 주주제안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이달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 안건조차 상정하지 못하게 됐다. 법원이 “KCGI가 ‘주주제안을 하려면 회사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상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한진칼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 행동주의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19년을 주주 행동주의 성장의 원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기관들은 앞다퉈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에 이어 올해는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한국투자공사 등이 책임투자 행보를 본격화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KTB자산운용 등 민간 자산운용사도 이른바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기업들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SK와 BGF리테일, 오리온 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총에 올렸고 자산 총액 2조 원 미만으로 감사위원회 도입 의무가 없는 농우바이오, 원익IPS, 한미사이언스 등은 감사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한진그룹도 KCGI의 주주제안 내용을 일부 받아들여 사외이사를 확대하고 유휴자산을 매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그룹 중장기 비전 및 한진칼 경영발전 방안’을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총 시즌은 많은 대주주에게 주주 관련 정책을 점검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배당 확대, 이사회 독립성 제고 등을 통해 지주사의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기업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