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예보] 웹툰 '금수저' 성현동 작가 "인간사회에 계급은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까요"

입력 2019-04-16 16:46 수정 2019-04-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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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구에서 만난 성현동 작가는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욕심 부리지 말라는 부모님 가르침대로 욕심 없이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면서 “일상에서 크게 화낼 일도, 슬퍼할 일도 없이 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다”라며 미소지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10일 중구에서 만난 성현동 작가는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욕심 부리지 말라는 부모님 가르침대로 욕심 없이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면서 “일상에서 크게 화낼 일도, 슬퍼할 일도 없이 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다”라며 미소지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

유럽의 오래된 속담이다. 유럽 귀족층은 자녀가 태어나면 유모가 은수저로 젖을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재력이 그대로 자녀에게 세습됐다. 유럽의 은수저가 한국에도 넘어왔다. 청년들은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에 따라 자신의 수저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현상을 경험했다. 일명 ‘수저계급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대한민국 전체에 퍼졌다.

10일 중구에서 만난 웹툰 ‘금수저’의 성현동 작가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계급으로 나뉘지 않았던 역사는 한 번도 없었고, 인간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계급이 존재해 왔다”면서 “예전에는 인류가 수렵생활을 하면서 거둔 식량 가운데 남는 잉여분을 나눠 가지면서 계급이 생겼고, 현대에 와서는 그 잉여분의 종류가 달라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성 작가가 작품의 이름을 금수저로 지은 것은 수저라는 단어가 지니는 함축적 의미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입에 넣는 수저는 먹고 사는 일 즉,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리 삶과 밀접한 물건이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수저의 종류에 따라 직업 및 사회적 위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은 역사 속에서 명목적 계급은 소멸했지만, 실질적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 작가는 ‘금수저’를 연재하는 2년 동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80살까지 계속 만화를 그리는 것이 작가로서의 목표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성 작가는 ‘금수저’를 연재하는 2년 동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80살까지 계속 만화를 그리는 것이 작가로서의 목표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웹툰 ‘금수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흙수저 승천이 부잣집에서 태어난 금수저 태용과 운명이 바뀌는 이야기다. 승천은 우연히 만난 할머니에게서 금수저 한 세트를 받고, 금수저를 이용해 부모님은 물론, 미래 배우자까지 바꾼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성 작가는 돈과 가족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둘 중 무엇을 택하는 것이 행복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승천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한다.

“사실 행복이라는 말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행복이라는 것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밥 한 끼 못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에게 행복은 당신 자신에게 달린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으로서는 그런 말이 오히려 자신을 농락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돈과 사랑, 돈과 우정. 이런 것들 사이에서 무엇이 행복에 가까운지는 답하기가 쉽지 않아요.”

성 작가는 자신을 ‘평범한 수저’라고 칭했다. 유복한 집안의 아들도 아니었고,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직장을 세 번이나 옮겼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그는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셨던 가장 큰 가르침은 욕심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탐색했고, 마침내 늦은 나이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성 작가의 20대는 보통의 청년처럼 불안정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는 새벽에는 편의점 알바를, 낮에는 번역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후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세 번의 직장을 옮기면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성 작가의 20대는 보통의 청년처럼 불안정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는 새벽에는 편의점 알바를, 낮에는 번역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후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세 번의 직장을 옮기면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애초에 나 같은 흙수저가 그런 것 신경 쓰면 안 되는 것 아니야?”

수학여행비가 없어서 학교를 결석하려고 했던 승천은 부모님에게 괜한 화풀이를 한다. 승천은 한번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할머니에게서 받은 금수저를 이용해 가족을 버리고 부잣집 아들이 되는 운명을 선택한다.

하지만 성 작가는 흙수저의 운명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인의 삶에 어떤 경험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고, 좋은 경험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운명은 바뀌게 된다”면서 “제 친구 한 명도 정말 힘든 가정환경을 보냈지만, 지금은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장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 작가는 이어 “물론 모든 일은 ‘네게 달렸다’라는 말이 각종 채용 비리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나를 응원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들이 내게 선사하는 경험들이 분명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성 작가는 웹툰 작가 세계에서는 금수저, 흙수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은 자신이 가진 수저와 상관 없이 오로지 '재미'가 최우선인 세상"이라며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성 작가는 웹툰 작가 세계에서는 금수저, 흙수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은 자신이 가진 수저와 상관 없이 오로지 '재미'가 최우선인 세상"이라며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금은 깨끗이 녹아도 금이지만 흙은 계속해서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어. 여러 가지가 섞여 있기 때문이지.”

승천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금수저를 건넸던 할머니는, 승천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같이 말한다. 금은 녹기 전과 녹은 후에도 똑같이 금이지만, 흙은 계속해서 변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승천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난한 가족보다 돈을 택해서 충분히 멋지고 행복한 삶을 꾸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성 작가가 할머니를 만났다면 그의 선택은 어땠을까. 그는 고민 없이 바꾸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욕심을 가지지 않는 마음,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 소소하게 즐기는 취미, 내가 살아온 이야기. 성 작가는 이런 것들이 돈을 줘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사회는 흙 같은 사회에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모여 살만한 사회, 사람다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의 영향력은 크지만, 금 이전에 사회를 이루는 근본이 흙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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