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에 대한 초점은 달랐지만 논란은 내부에서도 나왔다. 앞서 18일 신인석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한은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 및 금융안정과 관련해 사실상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볼 때 우리 금통위가 가계부채로 대표되는 금융안정에 부여한 가중치는 여타 국가와 비교할 때 좀 더 높았다”며 정책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같은 논란은 한번 잘못 꽨 단추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깊이 우리에게 그림자로 남는지를 곱씹어보는 계기가 됐다는 판단이다. 즉, 돌이켜보면 가까이는 박근혜 정부시절 빚내서 집사라는 소위 초이노믹스(최경환+이코노믹스의 합성어)가 만들어낸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립성 내지 중립성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 한은 책임은 간과할 수 없다.
이밖에도 금리인상과 인하라는 통화정책에서 인하는 쉽고 인상은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게 만들었던 시장과 언론을 비롯한 주변 환경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해 한은 국정감사(국감) 직전 터진 청와대와 금피아, 보수언론이 연합해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은 금리인하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대표적인 예다. 최근 만났던 정부 경제부처 기관장 출신 인사도 한은 내부 사람들에게 들었다며 “한은 통화정책 결정은 언론 기사를 보고 한다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한은이 외부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은은 최근 이같은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커뮤니케이션 강화는 물론,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과도한 언급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한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신뢰받는 한국은행’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상 이같은 노력은 본질과 멀다. 조변석개하지 않는 통화정책과 함께, 전망능력 강화, 현안에 대한 분석과 충고 없이는 백면서생에 매몰돼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 확장기 초입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맞물려 있다. 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5월 금리인하가 단행된데 이어, 2016년 6월까지 총 여섯 번의 금리인하가 이뤄진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는 2.75%에서 1.25%로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경기 수축기 금리인상이 잘못이라면 경기 확장기 금리인하도 잘못임에 틀림없다.
실제 직전 경기순환기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제10순환기를 보면 통화정책은 같은 방향으로 이뤄졌었다. 확장기였던 2009년 2월부터 2011년 8월까지 통화정책은 확장기 초기였던 2009년 2월 금리인하를 제외하고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다섯 번에 걸쳐 금리인상이 단행된다. 반면 수축기인 2011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는 두 번의 금리인하가 있었다.
한은은 뒷북 인상 논란이 불거지자 참고자료를 내고 “2017년 인상은 성장과 물가 회복세가 뚜렷해지는 모습이었던데다 가계부채의 높은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금융불균형 누증 위험에 대한 우려가 증대했기 때문”이며 “2018년 인상은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으나 대체로 잠재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 반면 가계부채가 소득증가율을 상회하는 높은 증가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주택시장으로의 자금쏠림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사후에 기술적으로 확정된 경기순환의 정·저점만을 기준으로 정책운용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두 번의 금리인상에 모두 찬성했던 한 금통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순환이 뚜렷치 않다. 정저점을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지난해말 금리인상은 돌이켜보면 너무 늦었었던 것 같다”며 좀 더 일찍 금리인상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실제 신인석 위원에 앞서 5월 기자간담회에 나섰던 조동철 위원은 “통화정책 목적조항에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문구가 추가된 것은 2011년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부터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을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며 “실제로 2012년 이후 한은은 통화정책을 설명함에 있어 인플레이션보다 미국과의 금리격차, 가계부채, 부동산 가격 등과 같은 금융시장 상황을 훨씬 더 강조해 왔다. 금융안정에 유의하는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비대칭적으로 운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한은 금리인하가 가계부채 급증을 유발하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안정을 저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즉답을 회피했다. 조 위원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초이노믹스가 있었던) 2014년 금리인하 당시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를 반대했었다”며 “완화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답했을 뿐이다.
가계부채 폭등 문제는 현재까지도 통화정책은 물론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문이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은 97.7%로 2017년말(94.8%) 대비 2.9%포인트 상승했다. 이같은 상승폭은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중국(3.8%포인트) 다음으로 큰 것이다. 지난해 금리인상이 그해 마지막 금통위가 있었던 11월에나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다. 결국 금리인상을 해야할 때 너무 커진 가계부채 문제로 금리인상에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