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가난은 운명이 아니더라”

입력 2019-09-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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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경주시청 복지정책과 주무관

▲이윤희 경주시청 복지정책과 주무관.
▲이윤희 경주시청 복지정책과 주무관.
누군가는 의지를 갖고 노력해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성공적인 삶을 살지만, 누군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최저생계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이처럼 힘든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마치 운명 같아 보였다.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1999년 9월 7일 제정된 법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길을 걷던 중 외나무다리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는 다리를 무사히 건너고, 누군가는 미끄러졌다가 다시 다리를 붙잡고 오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리에서 떨어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렇게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받쳐주는 그물망이다. 빈곤은 소수 약자들의 문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돕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탈수급과 자립이다.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연을 맺은 두 청년이 있다. 모두 부모님 없이 홀로서기했다. 한 청년은 지방직 공무원이 됐고, 한 청년은 고등학교 중퇴 후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용접기술을 배워 취직에 성공하고 가정까지 이뤘다. 그 청년은 현재 야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니 가난은 결코 운명이 아니더라.

두 청년을 보면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이들의 성공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다.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도움을 주지 못할 때 그렇다. 가령 부양의무자가 존재하지만 부양의무자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이럴 땐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의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그나마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축소되고, 교육·주거급여 수급자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고, 맞춤형 급여체계가 도입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도가 개선·확대됐다. 그럼에도 송파 세 모녀 사건, 증평 모녀 사건, 탈북민 모자 사건 등 비극적인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의 보장성과 별개로 신청주의의 한계, 초기상담 미흡 등이 원인이었다.

일선 현장에서는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를 통해 사회복지 대상자 발굴, 공적급여 제공 및 민간 복지자원을 연계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지만, 취약계층이 생활고에 못 이겨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에서만큼은 이럴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생각하며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책임을 되새긴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게는 대상자의 선정·안내 과정에서 신청인에게 필요한 다른 복지사업을 연계하는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중요한 상황 변동이 발생할 때 수급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개인별로 찾아주는 복지멤버십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복지는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을 끌어올리는 동아줄이자,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사람들을 더 떠밀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버팀목이다. 이 동아줄과 버팀목을 보다 튼튼하게 하기 위해선 복지제도 강화와 적극적인 행정이 우선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앞으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과 차세대사회보장정보시스템 도입을 통해 복지제도의 선진화를 이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도 적극적인 행정을 통해 국민의 믿음직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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