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는 아세안 10국과 한국·중국·호주·일본·인도·뉴질랜드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FTA’이다. RCEP가 인도를 포함해 최종 타결되면 전 세계 인구의 48%(36억 명),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2%(27조4000억 달러), 세계 교역의 29%(9조 6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FTA가 된다.
RCEP 협정문 가운데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중소기업, 정부조달, 경쟁 챕터는 기존 한·아세안 FTA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들로 무역환경 변화를 반영하여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를 포함한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상거래 규범 도입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재권 전반에 걸친 포괄적 보호 규범을 마련한 것도 우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무역 원활화’ 기반이 마련된 것도 매우 중요하다. 16개국에 대한 통합 원산지 기준을 설정하여 기업의 FTA 활용 편의성을 제고하고, 역내 가치사슬 강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RCEP 참여국 가운데 아세안, 인도, 싱가포르, 중국, 호주, 베트남, 뉴질랜드 등과 7개의 FTA를 체결한 상태인데 FTA별로 각기 다른 원산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의 행정적 부담과 비용이 컸다. 통합 원산지 기준 설정은 이러한 부담을 크게 완화시켜 FTA 활용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 RCEP 참여국 전역에서 재료를 조달·가공해도 재료 누적이 인정되기 때문에 역내 생산가치사슬 형성이 활발해지고, 역내 산업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합의가 RCEP 참여국들과의 기존 FTA보다 진일보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대효과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인도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급증을 우려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참여국들이 어떤 대응책을 가졌는지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치 않다. 2020년 최종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인도의 참여가 불발될 경우 RCEP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공조해야 하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인도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업그레이드 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지이다. 일본은 RCEP 참여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이고, 최근 한국에 대한 불합리한 수출규제로 WTO 분쟁절차까지 진행 중이다. RCEP를 통한 일본과의 시장 개방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해 면밀히 분석하고, 어떤 식으로 경쟁과 협력을 할 것인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는 RCEP의 향후 진행 상황이 미·중 간 패권 다툼 양상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관여를 정책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하는 ‘자유롭고 열려 있는 인도·태평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정부는 RCEP가 중국 중심이 아닌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농수산물 등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신남방정책을 본격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