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디자인 철학을 이어가겠습니다.”
손풍기, 마우스 패드, 휴대전화 거치대 등 IT 전자기기 소모품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생산성이 낮아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해온다. 이렇다 보니 싼값에 편히 쓰다가 버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도 이미 오래다. 이런 생각에 의문을 붙인 벤처기업이 있다. 바로 ‘벤그룹(vengroup)’이다. 벤그룹은 디자인에 철학을 입히고, 애프터서비스(A/S)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을 생산하면 얼마든지 저가 수입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휴대전화 액서세리와 무선 충전 거치대를 생산하는 김정식(48) 벤그룹 대표를 만나 새해 청사진을 들어봤다.
직원수 4명의 벤그룹은 2014년 3월 스타트업을 오픈했다. 현재 휴대용 선풍기(손풍기), 휴대전화 무선 충전기 등 액세서리와 차량용 오토슬라이드 무선 충전 거치대를 생산하고 있다. 김 대표가 최근에 론칭한 제품은 고속무선충전 마우스패드와 핸디서큘레이터가 결합된 아이디어 상품이다. 김 대표는 창업 전 MP3, 휴대폰 주변 기기 등 휴대용 전자기기 제조회사에서 디자인 실장으로 근무했었다. 초창기에는 위탁 디자인하거나 설계 수주를 맡았고,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단순히 수입해서 판매했다. 그러다가 2018년부터 직접 제조를 시작했다. 그가 개발해 판매한 유명 제품에는 국내 최초로 젤타입 흡착 패드를 적용한 휴대전화 거치대 ‘대쉬크랩’이다. 여기에 패브릭 재질 실내용 그네인 ‘파파스윙’ 등이다. 그중에서도 휴대용 날개 없는 선풍기는 2018년 직접 디자인 및 개발을 진행해 현재까지 약 60만 개를 판매하는 성적을 거뒀다.
김 대표는 벤그룹이란 회사 명칭을 ‘VENTURE’의 앞 알파벳 3글자 ‘VEN’에서 따왔다. 여기에 대형그룹사처럼 큰 회사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미를 더해 ‘벤그룹’으로 정했다. 제조회사 디자인 실장까지하며 승승장구하던 김 대표가 창립한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디자인 철학’에 대한 자신만의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소속으로 MP3, 휴대폰 액세서리를 만들 수많은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성과도 많았지만 제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디자인 철학에 대한 갈망이 컸다”며 “단순히 회사 소속의 디자이너보다는 직접 고객과 접촉하며 ‘인간 김정식’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은 욕구가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지켜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순수한 디자인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저가의 수입 유통 및 제조 현실에 맞서기가 벅차기 때문. 그는 “저희가 고민했던 디자인을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반면에 중국산 대비 높은 원가, 금형비 등 초기 개발비 부담, 개발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한 개발 시간 지연 등 애로사항이 많다”고 털어놨다. 마케팅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직접 판매를 시작했으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고객에게 제품을 알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요즘 각광받고 있는 유튜브나 SNS 사이트,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광고를 통해 저희 제품을 알릴 수는 있으나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높아 최적의 광고 패턴에 대해 항상 고심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김 대표가 뚝심 있게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지켜내고,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결국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국내 디자인·제조에 대한 자부심 덕분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우수한 디자인 및 제조 역량과 소비자들의 높은 품질 및 디자인 지향성 등 고유의 장점이 있다”며 “이 같은 장점을 살려 원가 경쟁력과 다른 저희 회사만의 경쟁력을 극대화해 오랜 시간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협력사와의 연대 역시 중요한 선점과제다. 김 대표는 “간단한 제품이라도 수많은 협력사 도움 없이는 제품을 제조할 수 없다”며 “협력사들과 같이 개발 단계부터 같이 고민하고 협업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품을 론칭하고, 그 이익을 공유하는 이상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