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계 마지막 창업세대 퇴장, 기업가정신도 쇠락

입력 2020-01-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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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로 타계했다. 이로써 삼성과 현대, LG, 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일구고 경제개발을 이끈 이병철·정주영·구인회·최종현 회장 등에 이어, 신 회장을 마지막으로 재계 창업 1세대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또 다른 창업세대였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작년 별세했다.

고인은 대표적 자수성가 기업인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건설 분야에 걸친 거대 그룹을 키워낸 신화적 경영자였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강점기이던 1942년 단돈 83엔을 들고 홀로 일본에 건너갔다.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하면서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1948년 일본 롯데를 설립해 껌과 화장품, 비누 사업을 벌였다.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롯데는 한일 수교 이후 모국에 진출한다. 일본에서 번 돈을 들여와 1967년 한국에 자본금 3000만 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지금 90여 개 계열사. 자산규모 115조 원, 매출 90조 원의 국내 5위 그룹으로 올라섰다.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본서 번 돈을 한국으로 빼돌린다”는 일본 측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고인의 말년은 시련이었다. 2015년 두 아들인 신동주·동빈 형제간 후계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고 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논란을 빚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자신은 배임 등의 혐의로 3년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가 일본의 귀화 권유도 뿌리치고 ‘기업보국’(企業報國)의 가치를 내세워 산업 불모지였던 모국에 선구적 투자로 경제부흥에 기여한 공헌까지 폄하될 수는 없다. 신 회장은 “한국 롯데에서 얻은 이익은 반드시 한국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항상 강조했다.

그는 또 일생동안 열정과 창의적 도전의 기업가정신을 보여주고 실천했다. 특히 관광산업에 대한 집념이 유난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특별한 돈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사업이라는 지론에서 롯데호텔과 면세점, 롯데월드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관광산업 발전에 진력했다. 2017년 완공시킨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그가 거둔 마지막 결실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후퇴하고 있는데도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하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와 정책만 쏟아지는 현실이다. 국내 기업들마저 한국의 환경에서는 더 이상 사업하기 힘들다며 계속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 경제를 이만큼 키운 주역이었던 창업세대가 막을 내린 지금, 쇠락하고 있는 기업가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리지 못하면 경제 재도약도 기대하기 어렵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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