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권’으로 불리며 주목받던 경기도 평택과 이천, 안성에 불 꺼진 아파트가 늘었다. 직장·주거 근접 수요 확대보다 공급이 빠르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단지 조성 시점에 따라 미분양 적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전국 미분양 아파트 6만6776가구 중 경기 미분양 아파트는 9521가구(14.2%)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 ‘미분양 무덤’이라는 오명이 붙은 대구(8864가구, 13.3%)를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9월 4971가구에서 1년 만에 약 2배 늘었다.
경기 31개 시·군 가운데 미분양이 가장 많은 지역은 평택과 이천, 안성이다. 9월 말 기준 세 지역의 미분양 가구 수는 경기 전체 물량의 54%를 차지한다. 평택 미분양 아파트는 2847가구로 올 1월(361가구)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이천은 10배(154가구→1585가구) 이상 증가했고 안성(459가구→739가구)은 60%가량 확대됐다.
청약 성적을 보면 이달 평택시에서 분양한 ‘평택브레인시티 한신더휴’는 887가구 모집에 440건만 접수됐다. 앞서 분양했던 ‘평택브레인시티 대광로제비앙 그랜드센텀’(1070가구)과 ‘지제역반도체밸리 해링턴플레이스’(1158가구)도 모두 미달이 났다.
이천도 비슷하다. 이달 공급한 ‘신안인스빌 퍼스티지’ 1·2순위 청약에서 총 451가구 모집에 203명만 접수했다. ‘롯데캐슬 센트럴 페라즈스카이’(801가구), ‘이천자이더레브’(635가구) 등 올해 이천 분양시장에 나선 단지들 다수가 고배를 마셨다. 8월부터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분양이 급격하게 증가하거나 해소가 더딘 지역, 향후 미분양 가구 발생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미분양관리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경우 분양보증을 발급받으려면 사전 심사를 진행해야 해 신규 분양이 까다로워진다.
평택은 이천보다 미분양 가구 수가 많은 상황이라 다음 심사 때 미분양관리지역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안성은 8월 지정됐다가 미분양 물량이 일부 빠지며 9월 해제됐다.
세 지역의 공통점은 ‘반세권’이다. 정부는 올 초 평택과 이천 등 경기 남부 다수 지역에 반도체 기업과 관련 기관이 밀집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평택에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이천에는 SK하이닉스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안성에는 국비 411억 원을 투입해 반도체 산단을 만들 예정이다.
업계에선 산단이 활성화되기도 전에 과잉 공급된 아파트 물량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직 교통망이 확충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산단이 들어선다는 이유만으로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리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인 평택·이천 등은 미분양 주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미분양 적체가 장기간 이어지면 지역 건설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려는 흐름도 청약 시장 냉각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애초 2030년까지 경기 평택시에 총 6개의 반도체 생산라인(P1~P6)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9월 P4·P5 공장 건설 일정을 내년 중순으로 미뤘다. 가동 중이던 P2와 P3 공장의 경우 일부 파운드리 생산라인 설비 전원을 내리는 ‘콜드 셧다운’을 시행했다.
다음 달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디딤돌대출 문턱을 높아지며 미분양 해소까지는 시간이 더욱 소요될 전망이다. '방공제' 면제 영향이 커서다. 방공제란 세입자가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만큼을 대출금에 제외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경기도(과밀억제권역) 소재 시세 5억 원 아파트를 매입할 때에는 3억5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규제 적용 시 대출가능액은 방공제 면제액 4800만 원을 뺀 3억2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백새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개발사업은 많은 재원과 시간이 필요해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