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가 9일(현지시간) 7%대 이상 급락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악화에 더해 국제유가가 20%대의 폭락세를 보이면서 시장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고 미국 CNBC방송이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11만1000명, 사망자 3800명에 달하면서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 것도 경기침체 우려를 키웠다.
다우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013.76포인트(7.79%) 폭락한 2만3851.02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는 장중 한때 2158포인트(8.3%)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S&P500지수는 225.81포인트(7.60%) 미끄러진 2746.5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624.94포인트(7.29%) 떨어진 7950.68에 각각 장을 마쳤다.
다우지수는 7.87% 폭락했던 지난 2008년 10월 15일 이후 가장 큰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포인트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S&P지수는 2008년 12월 1일 이후 최대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날 장중 주가 급락으로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거래가 일시 중단됐다.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이날 오전 9시30분 개장과 함께 폭락하기 시작해 약 4분 만에 거래가 중지됐다. S&P500지수가 7% 하락,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면서 15분간 거래가 중단된 것이다. 뉴욕증시는 이후 9시 49분께 거래를 재개했다. S&P500지수는 거래 재개 이후에 또다시 7% 이상 급락하며 결국 7.60%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다만, 서킷브레이커 2단계 발동 요건까지는 하락하지 않았다. 2단계는 S&P500지수가 오후 3시 25분 전에 13% 이상 급락하면 15분간 거래가 중단된다.
3대 지수 모두 이날 종가기준, 지난 2월 기록한 최고가 대비 약 19%나 하락하면서 ‘약세장(베어 마켓)’ 진입에 바짝 다가섰다. 최고가보다 주가가 20% 이상 하락하면 약세장으로 분류된다.
피터 세니치 캔터피츠제럴드 수석 시장 투자전략가는 “단순히 20% 하락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11년간의 강세장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년간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서 투자자들이 경제 둔화 신호도 무시한 채 주식 매수에 나섰다”면서 ”그 취약성이 시장이 이렇게 빨리 무너져내린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간 유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1991년 걸프전 이후 하루 기준으로 최악의 하락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4.6%(10.15달러) 폭락한 배럴당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WTI는 일일 낙폭 기준으로는 걸프전 당시인 1991년 이후 최대치로 주저앉으면서, 배럴당 30달러대에 겨우 턱걸이했다.
런던ICE 선물 거래소의 4월물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 대비 24.1%(10.91달러) 내린 배럴당 34.36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WTI와 브렌트유는 한때 각각 30% 이상 폭락한 배럴당 30달러, 31.02달러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10개 동맹 산유국 모임인 OPEC플러스(+) 장관급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 불발로 유가 전쟁에 불이 붙었다. OPEC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를 우려해 일일 생산량을 150만 배럴 감축하는 방안을 권고했지만, 시장 점유율 하락을 우려하는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합의가 불발됐다.
이에 사우디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초강수를 뒀다. 사우디는 지난 7일 유가를 20% 대폭 인하하고, 현재 하루 970만 배럴인 산유량을 4월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00만 배럴까지 증산한다고 예고했다.
러시아도 맞불을 놨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은 4월 1일부터 일일 생산량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며 가격 경쟁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원유 수요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공급 과잉 우려까지 나오자 국제유가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시장이 공포에 휩싸이면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몰려들었다. 이에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역대 최저인 0.318%까지 떨어졌다. 10년물 수익률은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1.5%대를 기록했었다. 국채 수익률과 국채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미 국채 30년물 수익률도 0.866%를 기록, 1% 밑으로 내려왔다.
국제 금값은 소폭 올랐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전날보다 온스당 0.2%(3.30달러) 오른 1675.70달러를 기록했다.
글로벌 증시도 크게 출렁였다. 영국 FTSE100지수(7.69%↓), 프랑스 CAC40지수(8.39%↓), 독일 DAX30지수(7.94%↓),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 50(8.45%↓) 등 유럽 주요 증시 벤치마크가 줄줄이 폭락했다. FTSE100의 낙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