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70여 년의 한국 교육 역사에서 학교가 문을 열지 않고 수업을 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만들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자 정부는 결국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감염병 장기화에 대비하고 미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원격교육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초ㆍ중ㆍ고등학교의 온라인 개학 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대입 일정도 2주일 연기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개학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이 다음 달 9일 먼저 실시한다. 일주일 후인 16일엔 동생들인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2학년, 고등학교 1~2학년이 온라인으로 원격 수업을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20일 초등학교 1~3학년이 영상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
◇교육 현장 대혼란…인프라 확충 시급 = 정부가 지난달 23일 이후 세 번의 개학 연기로 이미 법정 수업일수 감축에 돌입한 만큼 더는 개학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 마련한 '궁여지책'이다 보니 학생 간 디지털 격차, 인프라 부족, 수업 부실 등 선결 과제가 산적하다.
특히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면 학생의 가정환경에 따라 학습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교육부는 "가구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인 교육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기기 및 인터넷 지원 계획과 농산어촌과 도서 지역 학생들이 학교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큰 틀의 대책만 내놨다. 이에 교사들은 "구체적이지 않아 '사각지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온라인 개학의 핵심인 원격 수업 인프라 부족 문제도 거론된다. 이 부문은 이달 초부터 온라인 강의를 시행 중인 각 대학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인 만큼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그나마 교사가 개인장비를 활용하려면 학교에 무선 인터넷망이 구축돼 있어야 하지만 미흡한 학교(교실)도 많다. 신동하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은 “학교의 정보기술(IT) 기반은 20년 가까이 뒤처져 있다"며 "보안을 이유로 학교에는 특별실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와이파이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 컴퓨터에는 웹캠과 마이크가 없어 온라인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IT 지식ㆍ경험 부족…질문 사라진 수업 = 온라인 개학은 교사에게 전공이 아닌 IT운용 능력 등 다른 재능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교사들의 지식은 초보적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 위원은 "현재 중ㆍ고등학생들은 사설 학원 강사들의 현란한 인터넷강의에 익숙해 있어 경험이 부족한 교사들의 온라인 수업이 과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교육부가 예로 든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실시간 수업을 하더라도 실험, 실습, 토론 수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창의력ㆍ논리력과 직결되는 질문은 사라지고 주입식 수업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점도 원격 수업의 한계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해 수업 준비가 3, 4배 이상 오래 걸리지만 학생의 집중 정도나 반응을 확인할 수 없다 보니 교육적 효과는 훨씬 못 미친다"고 말했다.
대입을 앞둔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서울에 사는 학부모 김모(49) 씨는 "온라인 수업에 아이가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원격 수업은 사실상 개학 연기나 마찬가지인데 재수생보다 불리한 수험생들을 위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개학이 계속 늦어지면서 아이가 이미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원격 수업만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사교육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