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의 정규직화는 현 정권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노동정책 중 하나다. 최근 3년 동안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의 규모를 보면 9만 명이 넘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국공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인천공항 방문 시 제1호 공약사항으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기관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3년 전의 약속을 이행했을 뿐인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불공정한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하루 만에 2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비정규직의 분투와 애환을 소재로 한 ‘미생’이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성실하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비정규직 청년 장그래가 주인공이다. 당신 청년 비정규직의 비애가 청년들을 비롯하여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랬던 그들이 왜 이번 인국공의 직고용에 대해서는 공분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결과에 대한 질투나 이기심이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년 조국사태를 통해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인국공 사태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청와대까지 나서 취준생들의 채용 기회와는 무관하다고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화난 청년들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뿐 혼란은 오히려 가중되는 형국이다.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납득할 만한 기준이나 원칙을 제시해 달라는 것인데,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SNS상에서는 허탈감에 빠진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부러진 펜’ 해시태그운동이 연일 전개되고 있고, 심지어 2017년 5월 대통령이 인천공항 방문시점을 정규직 전환의 기준으로 삼은 것을 빗대어 ‘로또채용’이니 ‘성은을 입은 자’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냉소마저 쏟아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바람직한 고용정책이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선악으로 대비시켜 비정규직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 질서하에서 비정규직이란 자연발생적인 것이므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모든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화로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2007년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것이 소위 비정규직보호법이다. 이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면, 대폭적인 법 개정을 해서라도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작금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등하고 공정한 채용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인한 고용시장의 양극화에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심할수록 제한된 정규직 자리를 두고 경쟁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선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회적 갈등만 유발할 뿐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성급하게 정치 논리로 풀려고 한다면, 이번 인국공 사태에서 보듯이 구성원들로부터 공감도 얻지 못하고 분열만 자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