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탄핵소추를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일선 판사들은 외압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해야 할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이번 사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4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장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도 문제지만 법원의 수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것에 실망이 크다”며 “외압에 흔들리지 말라고 한 대법원장이 오히려 거세게 흔들리고 있어 보기가 민망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이런 상황이 참담하고 슬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어제부터 기사를 보고 착잡했다”며 “너무 참담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 부장판사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문제"라면서도 "판사가 녹음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임 부장이) 결국 의도를 가지고 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법관 탄핵을 추진한 국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농단에 관련된 고위 법관 중 사직서가 수리돼 나간 사람은 없고 임기 만료로 퇴임한 것으로 아는데, 대법원장도 그런 원칙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며 “사실 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해도 정치적 고려로 해석될 것"이라며 말했다.
이어 "임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한 시점이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직후이니 탄핵을 먼저 걱정했을 것 같다”며 “오히려 이렇게 몰아붙인 국회가 참 야속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여러모로 말실수는 분명히 한 것 같지만, 맥락도 살펴봐야 한다”며 “(국회는)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탄핵을 들고나와 법원을 뒤집어 놓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전날 임 부장판사가 면담 당시 거취 문제를 논의했으나 정식으로 사표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또 탄핵 추진 움직임을 이유로 사표를 반려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사법부의 미래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녹취파일을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돼 부득이 이를 공개하는 것”이라며 김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그걸 생각해야 한다”며 “그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하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에서는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임 판사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찬성 179표ㆍ반대 102표ㆍ기권 3표ㆍ무효 4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