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예방적 살처분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지침이 과도하다는 농가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고, 살처분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달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조류인플루엔자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최근 AI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른 살처분 기준을 반경 3㎞에서 1㎞로 축소했다. AI 발생 상황이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이번 겨울 야생조류에서는 고병원성 AI 항원이 186건 검출됐다. 앞서 가장 피해가 컸던 2016∼2017년 59건의 3.2배 수준이다. 반면 가금농장에서는 경기부터 제주까지 95건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고, 2016~2017년 당시 342건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중수본은 2주간 예방적 살처분 대상을 축소 조정하고, 살처분 축종도 동일 축종으로 제한했다. 향후 위험도에 대한 재평가를 시행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기존 지침이 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SOP 개정을 통해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500m에서 3㎞ 확대하면서 살처분 마릿수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닭과 오리 등의 살처분 마릿수는 2844만6000마리에 달한다. 2016~2017년 당시에는 380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농가의 잇따른 반발로 정부가 예방적 살처분 지침을 완화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으로 산업 기반이 무너진다는 우려마저 나온다"며 "한시적이지만 정부의 완화 조치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달걀 가격 상승도 지침 완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AI 발생으로 살처분된 산란계는 모두 1548만1000마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7일 기준 특란 30개 소비자 가격은 7744원으로 전년 대비 약 50%가 올랐다. AI 발생 이후 가격은 꾸준히 오르면서 정부는 신선란 수입 방안까지 내놨다. 설 이전 2000만 개를 수입했고, 이달까지 2400만 개의 신선란을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2주간 한시적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으로 이후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아직 산란계 수가 일정 수준 유지되는 상황이고, 달걀 수급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완화 조치 연장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AI 발생으로 산란용 종계 13만5000마리가 살처분됐지만 지난달까지 13만9000마리가 관세 없이 수입됐고, 현재 산란종계는 60만4000마리로 평년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