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파킹거래'는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채권 파킹거래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전직 펀드매니저들에게 배임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700만 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A 씨 등 펀드매니저들은 채권 파킹거래를 해오다가 자산운용사에 투자일임을 한 기관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채권 파킹거래는 채권의 보유 한도 규정 등을 피해 펀드매니저가 매수한 채권을 다른 증권사에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고 보관한 뒤 약속한 시점에 다시 사들이는 수법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증권사에 보관해둔 채권 가격이 올라 기관과 중개인이 모두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반면 금리가 오르면 손실을 보게 된다.
A 씨 등은 당시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해 증권사 손실이 수십억 원으로 누적되자 다른 투자자들의 돈으로 채권을 비싸게 매입해 손실을 보전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는 113억 원 상당의 손실이 전가됐다.
1심은 채권 파킹거래로 발생한 증권사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손익이전 거래를 한 부분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A 씨에게 징역 3년에 벌금 2700만 원 등을 선고했다. 1심은 손해액이 5억 원 또는 50억 원을 넘는다고 보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다만 채권 파킹거래는 위법하나 그 자체로써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채권 파킹거래는 투자일임계약에 따른 투자일임재산의 운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투자일임계약을 위반하고 펀드매니저로서 투자자에게 부담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심은 1심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증권사가 취득한 재산상 이익이 5억 원 또는 50억 원을 이상인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고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700만 원을 선고했다.
채권 파킹거래에 대해서도 “투자일임계약에서 예정한 투자일임재산의 운용 방법이라고 볼 수 없고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건전 영업행위에도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며 “투자자에 대한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2심은 “수익이 발생했다면 경제적 관점에서 투자자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채권 파킹거래를 통해 증권사에 발생한 손실을 투자일임재산에 이전시키는 거래로 인해 투자자에게는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고 증권사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