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이틀간 ‘변화하는 중앙은행의 역할: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The Changing Role of Central Banks: What Can We Do and What Should We Do?)’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를 통해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계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BOK 국제컨퍼런스는 2005년부터 개최됐으며 국내외의 학계와 정책 일선의 저명인사들이 모여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하지 못했으며 올해는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하되 행사 진행 내용은 유튜브 및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송출한다.
이 총재는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경제 위기 등 큰 변혁을 거치면서 변화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은 더욱 확고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안정 기능이 강조되면서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 위기 이후로는 경제 양극화가 확대되고, 디지털·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욱 넓어졌다”라며 “중앙은행은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과 구조개혁 등 경제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조화를 이루면서 조율해 나가는 데 보다 중점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중앙은행의 역할이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음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더불어 저금리 및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쌓인 수요압력에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공급병목 현상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1970년대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처럼 물가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 후 “이는 디지털 혁신이나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쉽게 답할 수 있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도 이러한 인식으로 CBDC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정책수단의 개발과 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활용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중앙은행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려 한다 하더라도, 소득 양극화와 부문 간 비대칭적 경제충격의 문제들을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장기 저성장의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 활용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태국, 그리고 어쩌면 중국 등 인구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300년이 넘게 중앙은행이 걸어온 역사는 바로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이라며 “중앙은행의 책무에 대한 해석과 이를 달성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