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강달러 ‘독한 칵테일’…증시 연일 ‘비틀’

입력 2022-08-31 10:46 수정 2022-08-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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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코로나19 터지고 나서 2년간 신나게 투자해 벌었던 걸 서너 달 동안 다 까먹고, 달러에 투자하자니 꼭짓점을 잡을까 불안하다.” (20대 직장인 박 모 씨)

코스피가 연일 약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31일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7.46포인트(0.71%) 내린 2433.47로 출발한 뒤 개인과 외국인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바닥을 다지고 반등하던 주가에 제동이 걸리면서 2400선마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2년 전 코로나 폭락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치솟는 달러 가치와 고물가, 고금리의 ‘독성 조합(Toxic Combination)’이 금융시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에서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 한 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하자 글로벌 증시가 출렁였다. 한편에서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온다. 민스키 모멘트는 과도하게 누적된 부채가 임계점을 지나면서 자산가치가 붕괴하고, 경제위기가 분출되는 시점을 말한다.

◇‘빚, 빚, 빚’…증시 흔드는 균열=2년 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이 금리를 내리고 현금을 풀며 유동성을 공급하자 자산가치가 치솟았다.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시장이 호황을 누릴 때 유행했던 말은 ‘벼락거지’였다. 투자를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거지가 된 신세를 자조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영끌거지’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동성 파티에서 무리하게 빚을 내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에 투자했지만 자산가치가 급락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영끌족은 하락장을 우습게 보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스톡푸어(빚을 내 주식을 사다 빈손이 된 사람들) 계절의 초입이다”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시장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까. 시장 주변 환경을 보면 악재투성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데다가, 치솟는 달러 가치가 우리 기업들의 기초체력을 악화시키고 있어서다.

28일(현지시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계속 5%보다 훨씬 더 위에 머무른다면, 파월 연준 의장처럼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을 우선해야 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물가와 환율 안정에는 도움이 된다. 더구나 미 연준이 가파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역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은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경제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환율이 단적인 예다. 달러당 원화 가격은 1350원대를 다시 돌파하며 나날이 연고점을 경신 중이다. 과거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건 1997년 말과 2001~2022년, 2008~2009년 등이다. 높은 환율에 수입 기업들은 울상이다. 수입 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다.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들도 상황은 좋지 않다. 경기가 좋을 때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이 생기지만, 그 반대라면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 100곳 중 87개 기업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무역수지도 뒷걸음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는 255억 달러로 집계됐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6년 만의 최대치다. 지금대로라면 연간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단기외채 급증과 원달러 환율
▲단기외채 급증과 원달러 환율
◇외국인은 정말 돌아온 걸까=7월 이후 외국인은 5조 원 넘게 한국 주식을 쓸어담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가 삐걱대는 상황에서 한국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는 외국인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외부 환경이 바뀐다면 ‘회색 코뿔소’에 올라탄 외국인은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다. 그 충격은 우리 금융시장에 쓰나미처럼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에 유입된 외국인 수급은 크게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1300원 이상으로 높아진 환율 수준을 감안하면 앞으로 외국인 수급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달러가 비싸질수록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돈을 빼고, 주가 하락이 가속하는 패턴이 관찰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환율 상승률이 3% 이상인 달의 코스피 하락 확률은 60%로 나타났다. 4% 이상이면 이 확률이 80%로 뛰었고, 5% 넘을 경우에는 100%였다. 올해 전체로 보면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과 선물·옵션 상품 등을 모두 합쳐 21조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주 잭슨홀 회의 이후 9월 미국발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대한 우려와 경기 침체 공포는 ‘한·미 금리 역전→자본 유출→원화값 하락→수입 물가 상승→국내 물가 악화’라는 경제 악순환을 재촉할 수 있다.

최제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긴축으로 인한 강달러는 역 환율전쟁 구도를 더욱 심화시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만큼 다른 국가의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진다”며 “달러화 부채가 많은 신흥국에게는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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