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은 지난 금융위기를 상기시키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세 번 연속 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며, 세계적 금리 인상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발 자이언트 스텝 금리 조정은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연상케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통화정책은 경기불황을 예방하기 위해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1990년대 미국은 최장의 경기확장기를 거치며 안정적인 경제지표를 나타내고 있었으나, 1990년대 말 IT업계의 소위 닷컴버블이 붕괴되며 경기하강이 예측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1년 9월 11일 미국 중심부에서 벌어진 9·11테러로 전대미문의 위기에 맞닥뜨린 연준은 금리 인하를 즉각적으로 단행했다. 이후 미국의 금리는 2003~2004년 사이 1%대까지 하강하였으나, 당시 부동산 버블 등 인플레이션 상황이 악화하며 2004년부터 인상 국면을 맞이하였다. 2006년 3분기 미국의 금리는 5%대로 짧은 기간 내 무려 5배의 금리가 상승한 것이다. 단기간에 빠르게 진행된 금리 조정은 자산 시장을 붕괴시켰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소규모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은 전체 금융시장의 부실로 확산되었다. 2007년 HSBC의 서브프라임 관련 사업 105억 달러 규모 손실이 발표된 이후, 미국 내 2위 모기지 회사였던 뉴센트리 파이낸셜이 영업을 중단했다. 이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 서브프라임 사태의 심각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였으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이후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가 파산신청을 하였고, BNP파리바은행,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굴지의 금융회사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2022년 현재,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상승이 국내 경제에 미칠 파급을 막기 위해 패권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 국가가 물가와 씨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우선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위해 8월 16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발효했다. IRA는 보건, 청정에너지, 조세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어 ‘미 국민의 생활 안정’이라는 목표의 국내 정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미국 내 생산시설에 대한 지원, 우려 외국기업(foreign entity of concern)의 자원 및 부품 조달에 대한 배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전쟁을 겪고 있는 유럽대륙의 시름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19개 국가로 구성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8월 9.1%를 기록하며 예측치를 넘어섰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은 7월 물가상승률 10.1%를 기록하였다. EU는 대러시아 제재 및 에너지 시장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 5월 ‘리파워EU(REPowerEU)’ 계획을 공표한 바 있다. 여기엔 에너지 절약, 공급 다변화 및 국제 파트너 지원, 재생에너지 보급 가속화, 산업 및 운송 분야 화석연료 소비 감축, 스마트 투자 등의 세부 전략을 담고 있으며, 특히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EU 공동 차원에서 감축시키기 위한 노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EU는 8월부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천연가스 수입도 3분의 2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곧 닥칠 겨울이다. 유럽은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고, 물가 상승을 최일선에서 견인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유럽발 뉴스에서는 연일 겨울에 대비해 에너지 공급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올해 전 세계적 금리 인상 기조에 동승했던 영국이 다음 회의인 11월에 파격적인 1.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파운드화 가치의 폭락과 증시 충격 소식이 즉각적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유럽의 겨울이 힘겨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