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탈각은 중국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21계로, 금빛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의미다. 매미의 유충이 성충으로 변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변하는데 과거에는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퇴각하라는 의미였지만 요즘에는 화려하게 태어나려면 자신을 가둔 껍질을 과감하게 부숴버려야 한다는 긍정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급격하게 자국 이기주의로 기울어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공급망과 분업화 체계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경제성장을 이뤄온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제체제에 맞설 금선탈각이 시급한 상황이다. 규제혁파를 2023 경제희망 키워드 중 하나로 꼽은 이유다.
그동안의 모습만 보면 정치권과 정부의 움직임은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국회가 2020년 3월 통과시킨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일명 타다금지법이 그것이다. 최근 서울·수도권 도심의 심야 택시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가 뒤늦게 타다금지법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택시업계의 반발에 타다를 금지했지만, 심야 시간 택시 부족난으로 인해 2년여 만에 규제를 다시 푸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0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이 최종 제·개정된 사례는 총 1359건이었는데 규제가 포함된 법안은 203건으로 16.7%에 달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기준 제·개정된 의원입법 중 규제를 포함한 비율은 15%였다.
또 대한상공회의소의 '규제정보포털로 본 규제 입법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신설·강화된 규제 법률은 총 304건(공포 기준)이었으며 이 중 절반에 달하는 151건이 경제적 규제였다. 이중 진입 규제가 114건으로 경제적 규제에서 가장 큰 비중(75.5%)을 차지했다. 이어 독과점·불공정거래 관련 경쟁 규제 22건(14.6%), 가격 규제는 15건(9.9%)으로 집계됐다. 특히 입법 주체별로 보면 의원입법이 271건(89.1%)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역대 정부는 매번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윤석열 정부도 취임 후 규제 철폐를 강조하며 두 차례에 걸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올해 11월 말 기준 18건의 규제 법률을 개정했다. 반면 국회는 같은 기간 여야를 가리지 않고 71건의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단순 계산하면 53건의 규제가 새로 생긴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는 어렵다”며 “모든 부처가 규제 해소 부처라는 인식하에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마저 30건의 규제 법안을 내놨다.
부처 간 이기주의로 인한 규제도 심각하다. 실례로 국가 위성영상 중 고해상도 영상 배포 기준을 4m에서 1.5m로 완화하는 지도산업 규제 개선은 15년 동안 국정원과 국방부의 반대로 실무진 수준의 협의만 지속하는 등 매번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다 최근 대안이 마련됐다. 금융과 공공 분야에만 사용이 가능했던 ‘마이데이터’ 서비스도 최근에야 통신과 쇼핑·헬스케어 등으로 확대됐다.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진 만큼 산업전략도 융·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부처 이기주의의 개선 없이는 이업종간 얽히고설킨 복합규제는 불변할 것이고 정부 지원의 효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장은 "의원 발의 법안의 경우 정부 발의 법안과 달리 규제 심사 절차가 없다"며 "법안 심사 단계에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기보다는 제출된 법안을 중심으로 소폭 수정해 의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규제에 대한 입법도 많다”며 “의원이 발의하는 입법안에 대해 국회에서 규제 영향을 검토하는 제도가 입법화될 수 있도록 국회 설득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