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양육시설 대부분 진학·취업여건 빈약
지역사회 내 차별적 시선 못 이겨 타지 떠나기도
지역이동 과정서 사회 관계망 단절
인천 소재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박강빈(26·남) 씨는 보호종료 후 취업을 위해 경기 화성시를 거쳐 서울 동대문구로 이주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장현철(27·남·가명)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전남 목포시 양육시설로 보내졌다. 보호종료 이후 해외취업을 시도했다가 광주로 복귀한 뒤 다시 취업을 위해 인천으로 이주했다. 장지호(25·남) 씨는 경북 상주시의 양육시설에서 생활하다 대학과 대학원 진학을 위해 대구로, 다시 경기 수원시로 지역을 옮겼다.
김요셉(27·남) 씨는 양육시설에 머물 때 첫 지역이동을 경험했다. 본래 충남 금산군 시설에서 생활했으나 이후 친모가 있는 논산시 시설로 옮겼다. 대전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은 직장이 있는 경기 성남시에서 생활 중이다. 장인우(26·남) 씨는 보호시설이 있던 전북 전주시에 자리를 잡았으나,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대학진학과 취업을 위해 광주, 전북 익산시 등으로 떠났다.
양육시설에서 생활하던 보호대상아동들이 보호종료 후 지역을 옮기는 대표적인 사유는 대학진학과 취업이다. 비수도권 양육시설 상당수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대학진학이나 취업을 위해선 지역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강빈 씨는 “사실 머물던 지역을 떠나는 걸 꺼리는 친구들이 많다”며 “십수 년간 생활한 공간이고, 본인의 관계망도 그곳에 한정돼 있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서도 대체로 떠나기 싫었지만 떠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245개 양육시설 가운데 73개는 수도권, 172개는 비수도권에 소재하고 있다. 이 중 비수도권 시설은 수도권과 비교해 군지역 소재 비율이 높았다. 인천에선 9개 중 1개, 경기는 29개 중 1개만 군지역에 위치했지만, 전남은 22개 중 9개, 경북과 경남은 각각 18개 중 5개, 24개 중 6개가 군지역에 있었다. 전남 함평군. 경북 청도군, 강원 고성군에는 양육시설이 각각 2개씩 있다. 세 지역의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각각 3만791명, 4만1661명, 5만25명이다. 여기에 고령인구 비율도 타 지역 대비 높다. 시설을 나온 청년들이 해당 지역에서 교육을 이어가거나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대책을 준비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정과제로 보호대상아동 거주를 가정형으로 전환하는 방향의 로드맵을 준비 중”이라며 “시설 기능 전환 등을 염두에 두고 자립지원 전담기관과 타 기관과 연계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단기적으로 현재 양육시설의 입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지방소멸과 맞물려 현실적 제약이 크다.
일부는 양육시설 출신이란 ‘낙인’을 지우고자, 또는 시설 거주 중 부정적 경험으로 지역을 떠난다. 장현철 씨는 “차별적 시선 때문에 지역을 떠난 친구들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장지호 씨는 “보이지 않는 차별적인 시선이 많았다. 뭘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부모가 없어서 그랬다’는 식”이라며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모든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느슨한 지역사회 내 관계망도 지역을 떠나게 되는 배경 중 하나다.
지역사회 안에서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보호대상아동으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박강빈 씨는 “사춘기 때는 양육시설에서 생활한다는 걸 숨기고 싶어서 시설 외 친구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며 “고등학교에 진학해 철든 뒤에 만난 친구들이 몇몇 있기는 한데, 교류한 기간도 짧고 지금은 지역이 멀어지니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 아동정책조정위원회에 참여 중인 신선(31·남) 민간위원은 “보호대상아동 10명 중 본인이 양육시설에 산다는 걸 오픈하는 친구는 2명 정도”라며 “이 얘기를 못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못 연다. 네트워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이동 사유는 다양하지만, 지역이동을 경험한 자립준비청년들은 공통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그나마 존재하던 관계망의 단절이다. 박강빈 씨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지역이 고향이라면, 출신지역이 고향은 아닌 것 같다”며 “시설 친구들은 흩어져 관계가 느슨해지고, 양육시설이나 전담기관도 떠난 친구들을 관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에서 나온 뒤 전담요원을 배정받지만 유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관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우 씨는 출신지역에 남았지만 혼자가 된 사례다. 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주변에 진지하게 상담할 친구가 없었다. 2년간 방황했다”며 “그땐 자립지원 전담기관도 없었다. 인생의 중요한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시설 출신 친구들은 물론, 시설·기관과도 인연을 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달 발간한‘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 현황과 개선방안(김지선 부연구위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부터 5년간 보호종료된 자립준비청년 5명 중 1명은 사후관리 담당자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