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공백이 심화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구인난이 지속되면서다.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 강화 대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 지역 주요 대학병원 대부분이 2024년도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전공의 모집에서 정원을 충족하는 지원자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전날 오후 5시 마감한 모집 결과를 보면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정원을 채울 수 있는 지원자를 확보한 곳은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하다.
서울아산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정원이 10명, 지원자는 12명을 확보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정원 9명에 지원자 7명, 서울대병원은 정원 17명에 지원자 15명, 서울성모병원은 정원 10명에 지원자 4명을 확보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정원 10명에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의 전공의 구인난도 심각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산부인과 역시 정원 10명에 지원자 0명을 기록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원 9명에 지원자 4명, 서울성모병원은 정원 14명에 지원자 7명을 확보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원 6명에 지원자 9명, 서울대병원은 정원 12명에 지원자 13명이 모여 인원 미달 위기를 넘겼다.
정부가 연중 잇달아 발표했던 필수의료 강화 대책과 소아 의료체계 개선대책이 의대생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지역·필수의료 위기 해소를 목표로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 의료 네트워크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1월, 2월, 9월에는 진료 인프라 및 의료진 보상 강화를 골자로 하는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제시했다.
정부가 전공의 구인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의사들이 폐과 선언을 할 정도로 소아청소년과가 붕괴한 상황에 정부의 전면적인 정책변화도 없었다”며 “올해 초부터 예견된 사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모집 당시 정원을 초과하는 지원자를 확보해도, 1~2년 뒤 중도 사직하는 비율이 높아 전공의 일손 공백이 발생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지방 의료 강화 대책이 오히려 비수도권 필수의료 분야 구인난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정부는 지역별 의료 역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을 5.5대 4.5로 조정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비수도권보다 수도권이 선호되는 것처럼, 비수도권 내에서도 필수의료 분야보다 선호되는 전공이 따로 있다”며 “늘어난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이 필수의료 분야로 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에서 의료진의 진료 활동을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고소를 당하거나, 부당한 배상을 요구받는 상황이 지속된다”며 “후배 의사들에게 필수의료 분야를 권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