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상속세는 정의롭고 정당하다”는 위선적 가스라이팅

입력 2024-02-06 05:00 수정 2024-02-0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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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소득 막는 도덕적 선으로 포장
富 파괴하는 제도적 국가폭력일 뿐
비뚫어진 평등주의 경제 발목 잡아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은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설득과 세뇌를 통한 심리지배’로 정의할 수 있다.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조 원 이상의 재산을 유족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상속세만 12조 원이다. 상속세가 워낙 고액이라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납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오너 일가는 ‘납세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약속에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이 가해졌을 것이란 합리적 추론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은 비켜갔지만 상속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상속세는 좌파 노무현 정부 때 획기적으로 강화됐다. 우리나라는 2001년 상속·증여세 관련해 ‘유형별 포괄주의’를 채택했다. ‘조세 포괄주의’는 과세요건과 대상을 법에 명시하는 ‘열거주의’의 반대 개념이다. 유형별 포괄주의를 도입하였음에도 참여정부는 2004년 새로운 거래 유형을 통한 변칙 상속·증여의 가능성을 이유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다.

상속세 강화에 정언적(定言的) 명분을 내 걸었다. 상속세 강화를 통해 ‘부의 세대 간 세습’을 막겠다는 것이다. 부모 잘 만난 이유만으로 앞서 가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상속과세는 ‘로빈 후드’식의 ‘공평을 위한 과세’로 인식되었고, 상속세는 땀 흘려 번 것이 아닌 단지 물려받은 불로소득에 과세하는 것이기에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세금으로 간주됐다. 상속세는 상속이라는 악을 응징하는 ‘도덕적 선’으로 등치되면서 ‘성역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상속세는 정의롭고 정당한 세금’으로 가스라이팅됐다.

할증세율을 포함해 최고 60%에 이르는 현행 상속세제를 유지하면 종국에는 국가가 ‘상속인’이 된다. 국가는 손 하나 안 대고 기업을 국유화할 수 있다. ‘자연인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기업의 수명’은 무한하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아 ‘계속기업’의 지위를 이어온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 자연인의 사망을 건너뛰어 계속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상속세율을 부과해 ‘성공한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금지하는 것은 경제효율을 낮추고 부를 파괴하는 국가의 ‘제도적 폭력’이다. 따라서 상속세 가스라이팅은 혁파돼야 한다.

상속세에 대한 세계적 추세는 폐지 내지 완화이다. 2018년 현재 OECD 35개 회원국 중 13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은 2005년부터 상속과세를 폐지했다. 상속세를 부과하더라도 세율을 낮게 10%대로 유지하거나, 10%대 이상의 상속세율을 적용하더라도 소득세율보다 낮게 부과한다. 프랑스는 상속세와 소득세를 같은 율로 부과하고 있다.

최근 상속세 가스라이팅의 허구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삼성그룹의 주가가 맥을 못 추는 이유 중 하나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이건희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대거 내다 팔기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동안 상속세는 ‘재벌가(家)의 일로 나와 무관하다’는 인습적 사고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6월 현재 이건희 일가 유족이 납부한 상속세는 6조 원이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받은 대출은 4조 781억 원에 달한다. 주식담보 대출 금리를 5%로 잡으면 이자만 연간 2000억 원이다. 기업경쟁력 강화와 주주배당에 쓰일 자금인 것이다. 상속세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대출뿐만 아니라 일부 핵심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로 충당했다. 2022년 3월 유족은 삼성전자 지분 약 2000만 주,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매각했다. 이들 주식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에 상속세는 ‘지배구조 약화’ 리스크로 이어진다.

2017년 최종 상속세 결정세액은 약 2조4000억 원으로 국세총액 265조3000억 원 대비 비중은 0.92%에 지나지 않는다. 국세 대비 1%의 상속세가 ‘동등한 출발을 위한 지렛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잘나가는 대표기업을 주저앉힐 뿐이다. 평등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경제를 도덕률로 재는 ‘좌파의 원리주의’가 수그러들지 않는 한 상속세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기능할 것이다. 우리 모두 가난해지면 ‘출발선상의 동등조건’이 충족된다. ‘고래’가 해체되어 죽은 고기로 거래돼야 교훈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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