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물량 확보해 첫날 모두 던지는 '단타 수익' 위함…사실상 도박판 평가
"묻지마 수요예측 비판받아야…특단의 조치 필요"
“좋은 기업이라고 해서 첫날 들어갔는데 반 토막이 났어요” 한 개인투자자의 탄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에이피알은 상장 첫날 시가총액 3조3000억 원대에서 2조4000억 원대로 하루 만에 약 9000억 원이 증발했다. 이후 계속 하락해 최근엔 공모가인 27만 원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공모주 시장이 사실상 도박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올해 상장한 12개 기업 모두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금액으로 공모가를 확정하면서 일어난 상황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스팩을 제외한 올해 상장한 신규상장 종목 12개 회사는 모두 확정 공모가가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상헬스케어, 이닉스, 에이피알, 케이엔알시스템, HB인베스트먼트, 포스뱅크 등은 희망밴드 최상단을 20% 넘게 초과했다. 기관 수요예측 때 기관투자자들이 공모가 최상단 이상의 가격을 써내면서 일어난 참사다.
기관투자자들이 공모가 최상단 이상의 가격을 써내는 대표적 이유는 당일 ‘단타 수익’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 첫날 가격 상승 제한폭이 60~400%로 확대되면서 공모주 물량을 1주라도 더 확보해 당일에 파는 기관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도박판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기존에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은 개인투자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수요예측을 투자 지표로 삼아 상장하는 종목의 가치를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관의 ‘한탕주의’가 만연해진 탓에 개인투자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기관들이 떠난 신규 상장 종목들은 속절없는 주가 하락이 지속하고 있다. 희망밴드 최상단을 20% 넘게 초과한 이닉스의 경우 상장 첫날 시가는 4만6550원이었으나, 종가는 3만7100원으로 끝났으며 이날 기준 2만3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케이엔알시스템도 첫날 3만7000원 시가였으나 종가는 2만7050원, 이날 기준 2만4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시가 대비 각각 48%, 33% 내린 가격이다.
HB인베스트먼트의 경우 공모가가 3400원이었으나 현재는 3100원대로, 상장 첫날 시가(1만100원) 기준으로 보면 무려 70% 가까이 내린 가격이다. 포스뱅크도 1만8000원이 공모가로, 현재는 1만4000원대를 기록 중이다. 마찬가지로 첫날 시가(4만7550원) 기준 70% 넘게 내린 가격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의 행태를 비판하며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기관의 묻지마 수요예측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가격 상승 제한폭이 올라가면서 생긴 문제로, 이를 해결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