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더불어민주당의 거듭된 영수회담 개최 압박에 8일 "국회 정상화가 먼저 아니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반복적인 법안 강행 처리와 탄핵 공세 속에선 회담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이 연일 영수회담 요구에 나서는 데 대해 이날 본지에 "모든 일에 순서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마무리 이후 당 차원의 논의를 한 뒤에 대통령실이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역시 이날 영수회담과 관련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여야 당 대표 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며 대통령실과 같은 입장을 내놨다.
민주당의 영수회담 제안은 앞서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6일 한 방송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고 운을 떼면서 시작됐다. 4월 첫 영수회담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을 제안한 것이다. 이어 하루 만인 7일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경제 비상 상황 대처와 초당적 위기 극복 협의를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며 회담 추진을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영수회담을 통해 대통령이 당면한 국가적 현안과 과제를 진단하며, 야당과 힘을 합쳐 위기 극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대통령실을 압박했다. 이어 "이를 통해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논의를 해쳐나갈 때 실질적인 위기극복이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2차 영수회담 거론에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였지만, 민주당의 영수회담 제안 의도와 회담 실효성에 의구심을 갖는 기류도 감지된다.
민주당이 영수회담을 제안하면서 다른 한 쪽에선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채상병 특검법 재발의에 나서기 때문이다. 앞서 채상병 특검법은 야당의 강행 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돼 두 번이나 폐기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또 야당 주도로 처리된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앞두고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회담을 제안한 의도가 민생·협치보다는 사실상 정치적 의도에 무게추가 실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후보가 영수회담 카드를 꺼내고 윤 대통령이 여기에 반응하는 식으로 국정 주도권을 쥐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지난 4월 첫 영수회담 이후 풀릴 듯했던 여야 갈등이 야당의 채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로 또다시 급랭하며 쳇바퀴 정국이 이어진 전례를 비춰볼 때 영수회담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