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보다 더한 ‘영끌’ 광풍이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전월 대비 7조5975억 원 증가한 559조7501억 원에 달했다. 증가 폭, 신규 취급액 모두 역대 최대다. 하지만 이건 약과일지도 모른다. 이달 22일 기준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65조8957억 원으로 6조1456억 원 늘었다. 갈수록 태산이다.
가계부채 총액도 무섭게 부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잠정) 잔액은 1896조2000억 원으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나랏빚(1145조9000억 원)까지 더하면 사상 최초로 3000조 원이 넘는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 규모(명목 GDP· 2401조 원)를 능가한다.
‘부채공화국’ 병리현상을 악성화한 것은 부동산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매매까지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결과 이달 셋째 주(1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28% 상승했다. 22주 연속 오름세다. 전셋값 상승세도 66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음 달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가산금리를 더 높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에 들어간다. 추가 조처도 검토 중이다. 당국이 비로소 제동을 걸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는 것이다. DSR 규제 한도를 더 낮추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갭투자의 먹잇감이 되는 전세대출을 조이는 방안도 테이블 위에 올린다.
늦은 감도 없지 않은 제동 전략이 그나마 먹히려면 정책 일관성이 관건이다. 때아닌 영끌 광풍이 분 것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수십조대 정책자금을 무분별하게 푼 데다 7월 도입 예정이던 2단계 스트레스 DSR을 돌연 연기해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채질한 탓이 크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8월 말까지 무조건 집 계약부터 해야 한다”며 막차 수요를 부추기는 게시글이 넘쳐난다. 말로는 집값을 잡겠다고 하면서 행동으론 정반대 신호를 보내는 오락가락 정책으로 민생 혼란을 키운 실책이 여간 크지 않다. 혼란을 더 키워서는 안 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어제 라디오방송에서 “최근의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고 했다. “은행이 물량 관리나 적절한 미시 관리를 하는 대신 금액(금리)을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내용의 타당성과 관계없이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으니 혀를 차게 된다. 금감원은 시중은행이 제멋대로 주담대 금리를 올리는 세상이 됐다고 보나. 한은의 긴축적 기준금리와 별개로 움직인 시중금리 또한 시장의 결정인가. 시중은행에 책임을 돌리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부터 명쾌하게 내놓아야 한다.
미국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내리면 집값과 가계부채가 더 곤혹스러운 화두가 될 것이다. 한은의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1년 후 주택가격 예상)는 2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다. 진퇴양난이다. 관련 당국 모두 할 일과 안 할 일,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가리는 데서부터 길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