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자정 이후 시행하는 응급수술 중 80% 이상이 대장항문외과 관련 수술로 집계됐다. 하지만 법적 소송에 따른 처벌이 많고,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대장항문외과에 지원하는 의사 비율은 점차 낮아져 개선이 필요한 지적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는 5일 오후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필수의료 최전선 대장항문외과 방어 전략’ 슬로건으로 ‘2024 대장앎 골드리본 캠페인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이러한 의견을 제시했다.
양승윤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지난해 18개 대학병원에서 진행된 응급수술 현황을 통해 대장항문외과가 필수의료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양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18개 병원에서 전신 마취 하에 응급수술을 받은 환자는 총 3만3644명이다. 이중 외과 응급 상황으로 간주하는 급성 복증 수술의 75%를 대장항문외과가 시행했다. 급성 복증은 복강 내 장기의 염증, 천공, 폐색, 경색, 파열에 의한 복통을 수반하는 질환으로 8시간 이내에 수술이 시행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외과적 응급 상황으로 간주한다.
양 교수는 “수술 후 환자의 40% 이상이 중증도가 높아서 중환자실 관리가 필요했다. 대부분 응급 상황이어서 80% 이상의 환자가 자정을 넘겨 야간에 긴급하게 수술이 시행됐다”면서도 “가장 많은 응급수술을 담당하고 있지만 높은 노동강도와 중증도 때문에 대장항문외과로 지원하는 외과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양 교수는 “대장항문외과로 지원하는 전임의 수는 2022년 45명, 2023년 35명, 2024년 21명으로 점차 내려가고 있다. 내년에 지원할 전임의 수는 공식적으로 없는 것으로 나타나 대장항문외과의 소멸까지 우려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에서 야간 응급수술의 절반가량이 충수염(맹장염)의 치료인 충수절제술이다. 유병률이 높아 위험도가 낮다고 분류될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복막염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조성우 강남차병원 대장·직장암클리닉 교수는 “급성충수염은 진행 정도에 따라 중증도가 천차만별이라 다양한 중증도와 합병증 발생 등에 따라 수술 후 보상체계가 달라져야 한다. 단순충수염의 경우 포괄수가제 체계에선 127만 원 적자, 신포괄수가제 체계에서 80만 원 적자로 나왔다. 수술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특히 조 교수는 “사회가 노령화하면서 노인 충수염이 증가하고, 기저질환을 갖는 충수염 수술이 많아지고 있는데, 포괄수가제는 치료 비용의 추가 투입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면서 “수술 잘하시던 교수들이 지금은 머리 심고, 지방 흡입 수술 담당 의사로 넘어갔다. 외과 분야에 남아있는 사람이 절반 정도에 그친다. 수가 현실화를 통해 외과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핵·치열·치루 등으로 대표되는 양성항문질환에 대한 적정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치핵 수술은 한해 15만 건 이상 시행되는 다빈도 수술 3위에 달할 정도로 대장항문외과 개원가의 토대가 되고 있다.
최동현 한사랑병원 원장은 “우리나라의 수가 체계는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 비용통제의 수단으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개업해 시행하는 수술의 대부분이 포괄수가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것이 최근 대장항문외과 지원이 급감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원장은 “포괄수가제는 수술 난이도나 전문경력에 대한 고려도 없으며, 위험도 반영도 미미하다. 기술발전, 숙련도에 따른 수술시간 단축이 수술행위 총업무량 감소로 파악돼 점수가 오히려 하락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 원장은 “최근 급격한 인건비 상승, 물가상승, 금융비용 상승과 같이 의료행위 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질 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반영도 부족하다. 생존과 지속성을 위해선 개원가가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공의도, 전임의도 나올 수 있다”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형록 대한대장항문학회 회장(화순전남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은 “대장항문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이기 때문에 비급여항목이 거의 없고, 수술과 관련된 기구 및 소모품들의 사용과 가격이 정부에 의해 모두 통제되고 있다. 대장항문외과의 방어전략은 어쩌면 도미노처럼 무너져가는 전체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자 하는 최후의 몸부림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범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교수)은 “대장항문외과 영역은 피로도가 높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환자나 보호자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법적 소송에까지 휘말려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되고자 지원하는 의사들이 아예 없어 향후 존폐가 걱정되는 상태”라면서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결과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소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