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최소화) 활동의 일환으로 기업이 앞다퉈 설치했던 화장품ㆍ생필품 등 리필 매장이 사실상 실패, 잇달아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2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때 18곳에 달했던 대형마트 내 생활용품 등의 리필 매장은 현재 3곳만 운영 중이다.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으로 대표 되는 리필 매장은 다회용기에 세제, 샴푸 등 생활용품 대용량 리필형 제품을 소분해 담아가는 곳이다. 생활용품을 살 때마다 발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고, 매일 쓰는 샴푸 등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친환경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 대형마트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확장했다.
특히 서울시가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고 리필이 가능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제로마켓’을 선보이면서 빠른 확산이 예상됐다. 서울시는 2021년 홈플러스 월드컴점을 시작으로 대형 유통매장 내에 제로마켓을 운영해왔다. 영세매장 등에서 소규모로 운영돼 온 제로마켓을 지역경제의 주류인 대형 유통매장에 도입하는 데 큰 의의를 뒀다.
하지만 지금 홈플러스에선 제로마켓을 찾아볼 수 없다. 4곳을 운영하다가 시범사업 후 모두 정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형 유통매장 내 제로마켓의 경우 시범운영 후 각 유통사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했으나, 현재는 매장이 없다”고 전했다. 롯데마트는 제타플렉스 잠실점의 H&B(헬스앤뷰티) 전문매장 '롭스플러스'에서만 샴푸를 소분해 판매 중이다.
이마트는 유통업계에서 리필 매장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나, 확산은 지지부진하다. 202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최대 13곳을 열었지만, 현재는 이마트 왕십리점과 은평점 2개 점포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고객과 환경에 도움 되는 개선방 향을 찾아 다음 모델 운영 방안 등을 고민 중”이라라고 말했다.
유통·뷰티업계는 리필 매장이 사실상 실패한 사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을 오래 전담해온 업계 관계자는 “리필 매장은 운영도 번거롭고 실효성이 없어 완전히 개선된 모델이 나오지 않는 한 현재로썬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뷰티업계 관계자도 “리필 제품 사용에 대한 인식과 고객의 수요가 밑받침돼야 리필 매장을 지속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제도적인 규제도 업체로선 부담이 큰 대목이다. 현행법상 리필 매장에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 한다. 화장품을 용기에 소분·충전하는 행위가 법령상 '제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관련 자격증은 따기도 까다롭고, 활용도가 크지 않아 도전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아 관리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난제로 인해 아모레퍼시픽도 2020년 뷰티업계 최초로 리필 스테이션을 선보였지만, 지난해 7월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접고 리필 제품 확대 등으로 노선을 틀었다.
일각에서는 우후죽순 쏟아졌던 리필 매장이 ‘친환경 이미지’만 챙기고 스리슬쩍 사라졌다는 비판도 많다. 소규모 리필 매장 ‘알맹상점’을 자주 이용하는 성민경(여, 28) 씨는 “대형마트의 리필 스테이션을 방문했을 때는 전용 용기를 따로 사서 써야 하는 곳도 많아, 오히려 플라스틱 사용을 늘리는 느낌이 컸다”고 지적했다.
성 씨의 말처럼 2021년 운영했던 이마트 에코 리필스테이션의 경우 전용 용기를 구매해야 리필이 가능했다. 세제, 섬유유연제 등은 화학용품으로 분류돼 법적으로 전용 용기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리필 문화 활성화를 위해선 개인 인식과 함께 정부의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