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아지한테 쓰는 약이 사람한테 쓰이는 약이었다고요?”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서며 반려동물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 건강 관련 산업은 물론 수의학이 발전하면서 반려동물 수명도 늘어나 동물병원을 찾는 반려인도 증가세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다수 의약품이 인체용 전문의약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2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동물병원에서 쓰이는 의약품 중 인체용 의약품이 약 70%가량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허가받거나 수입·유통되는 반려동물 의약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다수 국가에서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동물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약사들은 동물에는 동물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에게 쓰는 항생제를 동물에 쓰게 되면 해당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이 출현해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수의사들은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쓰지 않으려 해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한다. 수의계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상품이라는 게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된다. 동물을 위한 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 많지 않다. 회사도 돈이 돼야 약품을 만든다. 개나 고양이를 위한 약은 개발될 수 있어도 동물원에 있는 곰이나 호랑이를 위한 약을 별도로 만들 수가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체용 의약품을 동물에 처방하기 위해 소분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약물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속성이 손실될 우려가 있다. 또 4분의 1로 나누더라도 성분이 4분의 1이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동물의 경우 단 몇 ㎎ 차이로도 효능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분쇄된 상태에서 나는 쓴 향으로 인해 동물이 투약을 거부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동물 전용 의약품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는 동물용 의약품 개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었다. 지난해 12월 인체용 의약품 제조시설에서 동물용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관련 시설기준령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인체용 의약품 제조사가 동물용 의약품 제조시설을 따로 마련해야 하는 중복 투자 부담을 해소하고 고부가가치의 반려동물용 신약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제약업계는 앞다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조아제약과 삼진제약, 삼일제약, 동아제약 등은 동물용 의약품 시장에 진출했고, 대웅제약과 JW중외제약, 일동제약 등은 반려동물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업계는 반려동물의 수명이 늘면서 암이나 치매 등 난치병 치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도 반려동물 먹이(펫푸드), 펫헬스케어 등 반려동물 연관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단 계획을 올해 8월 제시했다. 이어 10월 다빈도 동물진료 항목 100여 개에 대해 부가가치세 면제를 적용했고, 체계적‧종합적 지원을 위한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법률(가칭)’ 제정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22년 기준 8조 원인 국내 반려동물 연관 산업 시장 규모를 2027년까지 15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8월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개·고양이) 양육 가구와 개체수는 2012년 364만 가구에 556만 마리에서 2022년 602만 가구에 799만 마리로 늘었다. 국내 동물의약품 시장은 가축의 질병 관리를 위한 축산용 의약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반려동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반려견·반려묘 등 전용 제품도 늘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도 성장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모르도르인텔리전스는 국내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9년 1억1074만 달러(약 1493억 원)에서 연평균 4.3%씩 성장해 2027년 1억4072만 달러(약 189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