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이 동물 치료에 사용되고 있지만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부실한 관리로 약물 오·남용과 불법 유통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28일 본지 취재 결과 동물병원에서 쓰이는 대다수 의약품은 인체용으로, 일부 제한된 조건하에서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등에 따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동물용 의약품이 개발돼 있지 않은 경우, 유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제한적으로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라고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약사들은 실제로 현장에서는 인체용 의약품을 우선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0년 대한약사회 의뢰로 의약품정책연구소가 실시한 ‘동물에 사용하는 인체용 의약품 관리제도 개선 방안 연구’에 의하면 동물병원에서 사용되는 인체용 의약품 중 17%는 이미 허가된 동물용 의약품이 있음에도 인체용 의약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23년 국정감사에선 동물병원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와 프로포폴이 사용되지 않고 사라진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북에 있는 A동물병원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총 300정의 식욕억제제를 납품받았지만 이후 폐업하면서 식욕억제제는 사라졌다. 처방기록도 없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유일하게 한국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포함해 인체용 전문의약품 관리·감독이 되지 않는 게 동물병원에서 사용되는 인체용 의약품일 것”이라며 “제약회사에서 의약품을 병원이나 약국에 공급할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산 보고가 이뤄진다. 약국은 처방전에 따라 조제하고 청구하기 때문에 그 내역이 고스란히 심평원에 남는다. 이러한 시스템이 동물병원에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에서의 인체용 의약품 사용 사례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약국에서 인체용 의약품을 판매한 동물병원은 1262개소였으나, 2021년 3568개소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의약품 판매 수량도 55만5922개에서 263만6756개로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의계는 인체용 의약품을 동물병원에서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동물에게 쓸 수 있도록 소분 판매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의계 한 관계자는 “전국 40개 약대 중 동물 의약품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학교가 4~6개에 불과하다. 기존 4년제 때는 아예 배우지 않았다”며 “동물에게 쓸 수 있는 약이 없기 때문에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동물 무게에 따라 의약품을 소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재활용할 수가 없어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 약을 소분해 달라고 해도 우리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도 알아달라”고 토로했다.
동물용 의약품이 사람에게 잘못 쓰이는 사례도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접 약국에서 ‘실리정’이라는 동물약을 구매했다고 했다. 실리정은 ‘개의 폐동맥고혈압에 의한 심부전 치료’ 목적으로 허가받은 동물용 의약품으로, 주요 성분 중 하나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이다.
남 의원은 “약국에서 동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별도의 수의사 진료나 처방 없이 쉽게 구매했다. 실데나필 성분이라 인체 오남용 사례가 굉장히 많다. 인수공통 의약품은 약국에서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오남용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약국개설자는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약사법에 있어 불법 판매가 아닌 상황이다.
앞서 2014년에도 30대 남성 2명이 인터넷 조건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 주선으로 2대2 소개팅에 나갔다가 술에 동물용 마취제 ‘졸레틸’을 타서 정신을 잃게 해 납치·감금된 사례도 있다. 현재 졸레틸은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됐으나 당시엔 지정 전이라 약국에서 일반인에게 판매가 가능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지만, 제도 개선은 더디다. 주관 부처가 불분명해서다.
동물병원에 대한 주무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 인체용 의약품에 대한 주무 부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다. 강병구 대한약사회 동물약품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진국처럼 동물병원에서 사용 가능한 인체용 의약품을 검토하거나 선정하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전문가와 정부 담당자가 포함된 곳에서 의약품 사용 범위를 정하고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은 명확하게 어느 부처가 관리·감독할 수 없는 구조다. 창구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