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혈액암 환자들이 신약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기 까다롭고, 전문 의료진도 부족해 내년부터는 환자들이 병원 문턱을 넘기도 힘들어질 수 있단 것이 의료 현장의 경고다.
대한혈액학회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65차 추계학술대회와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혈액암 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약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급여를 적용해 필요한 환자들에게 투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석진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외국에서는 이미 표준치료의 한 축으로 사용하는 여러 신약이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았거나 급여가 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라며 “의사의 입장에서 약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에게 쓸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노바티스의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가 2021년 허가돼 2022년 4월부터 혈액암 3차 치료 시 급여가 적용되는 상태다. 하지만 급여 기준이 모호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판단도 까다로워 혜택을 볼 수 있는 환자가 극소수다.
김혜리 대한혈액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세 번째 치료 시 사용하는 것만 보험급여가 인정되며, 그 전 치료에서 유의미한 반응이 없었다는 평가를 하기 위한 기준이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라며 “가령 2번째 치료를 한 사이클 했는데 암이 진행되면 환자와 의사는 당연히 약이 들지 않았다고 판단하지만, 심평원은 두세 번 사이클을 시도하지 않았다며 급여를 삭감한다”라고 설명했다.
급여 삭감 가능성이 상존하니 의사들도 환자를 치료하면서 병원의 눈치를 보게 된다. 킴리아는 1회 투여 비용이 약 3억6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약제이기 때문에 급여 삭감이 병원 경영에 주는 타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김석진 이사장은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이 약을 썼는데, 사후에 삭감이 되면 병원에 큰 손해로 돌아와 의사가 난처한 처지에 처한다”라며 “환자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라고 판단해 치료를 시행했음에도 삭감 이슈를 마주하면 자괴감이 느껴진다”라고 토로했다.
전문의 부족 사태도 혈액암 치료 환경을 악화하고 있다. 혈액암 분야는 응급 환자가 빈번해 전공의들이 선호하지 않는데, 올해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 이후 일손이 더욱 부족해졌다. 비수도권 거주 환자와 소아 환자부터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임호영 대한혈액학회 학술이사(전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급성 전 골수성 백혈병은 완치 비율이 높지만, 초기에 뇌출혈로 사망할 위험이 크다”라며 “작년, 재작년과 비교해 올해 이미 뇌출혈이 생긴 상태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을 수 있는 병임에도 진료 허들이 높아져 나아지기 어려운 상태가 됐을 때 병원에 오는 환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혜리 홍보이사는 “소위 ‘빅(Big)5’로 꼽히는 병원들도 교수들이 업무에 허덕이며 당직을 서고 있다”라며 “현재 남아있는 일부 전공의들이 내년 1월에 전문의 시험을 치르고 나가면, 그때는 전혀 대책이 없어 환자를 제한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