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국가는 상소를 멈춰야 한다

입력 2024-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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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경제부 전아현 기자 @cahyun
▲ 사회경제부 전아현 기자 @cahyun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모든 아픔에 적용되진 않는다. 최근 법원은 오래 전 부당한 공권력에 희생된 피해자와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들이 상처의 회복을 요구하는 데엔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2018년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분수령이 됐다. 당시 헌재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등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법원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재일동포 간첩단 등의 사건에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달 7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첫 항소심 선고 기일이 열렸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와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며 “정부가 피해자 13명에게 인당 7500만~4억2000만 원씩 총 45억35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확정했다. 법정 안을 꽉 채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쌍방 항소 기각에도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한 이유는 이들의 목표가 ‘정부의 배상’이기 때문이다. 청구한 금액을 다 받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4년 가까이 이어지는 재판이 하루빨리 확정됐으면 하는 게 피해자들의 바람이다.

이들의 간절함에 훼방을 놓는 건 국가의 상소다. 헌재의 결정이 무색하도록 정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배상을 미루기 위해 판결에 불복하는 ‘꼼수’를 부리는 셈이다.

7일 항소심 선고가 이뤄진 사건의 상고 기한은 이달 29일까지다. 최근 해당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이 국가의 상고 결정을 기다리다 다량의 약물을 복용해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여러 건의 1심 소송이 진행되는 중 사망한 피해자는 6명에 달한다. 만약 대법원 판단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몇 명의 피해자들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

항소심 선고 후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그는 “그냥 이제 여기서 끝내고 싶다. 더 이상 피해자분들이 다시 한 번 더 그 아픔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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