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령이 휩쓴 국내 채권시장은 장 초반 국채 10년 선물 지표 금리가 8거래일만 상승 전환하며 3% 코앞까지 튀었지만, 이내 급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금융당국의 유동성 공급 의지와 국가 신용도 하향 가능성은 낮다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평가가 나온 영향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악재가 단기적 이벤트에 그칠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향후 글로벌투자자들의 한국물 대외 신인도 저하는 우려했다.
4일 서울채권시장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투자자는 4468억 원 규모의 원화채권을 순매수했다. 3거래일 연속 순매수 우위다. 하지만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초유의 비상계엄령 사태가 발표 후 해제된 후폭풍으로 외국인의 경계감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한국채 투심 악화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추이 그래프에서 확인된다. CDS는 한 국가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로 부도 가능성이 클수록 높게 나타난다. 전일 한국 5년 CDS 프리미엄은 전일 대비 2.86bp 오른 36.94bp를 기록했다.
이는 블랙먼데이가 발발했던 8월 5일(3.03bp)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글로벌 49개국 중에는 아르헨티아(11.96bp)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한국 CDS 프리미엄은 미국 대비 4.29b 높을뿐 아니라, 일본(20.80bp)과 비교해서는 16bp이상 벌어졌다.
국채 10년 선물 지표 금리도 뛰었다. 이날 국채 10년 선물 금리는 연 2.776%로 0.05%p 상승했다. 개장 직후에는 연 2.830%까지 치솟으면서 1만724원까지 떨어졌다. 채권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이달 평균과 대비하면 다소 상승했지만,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2연속 금리 인하 이후 금리가 줄곧 하락세를 보여 시장에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 봤다.
오후 들어 빠르게 안정세를 찾은 것은 고강도 유동성 공급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통화당국은 이날 오전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시중에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도 이번 리스크가 금융정책 갈등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실질적으로 지금 당장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계엄령 이슈가 최근 채권시장 강세 속에서 일부 밀렸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향후 해소 과정에 따라 수급 혼란이 누적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의 수급을 크게 우려했다. 이미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이상 글로벌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입는 일은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열린 NICE신용평가·S&P글로벌 세미나에서 앤디 리우 S&P 전무는 “국제 투자 관점에서는 분명한 마이너스(-) 쇼크(충격)다. 한국 대비 다른 국가가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인식되면 한국 투자를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외국인투자자는 간밤을 회상하며 “글로벌 시장은 ‘쿠데타’와 ‘계엄령을 구분 못하고 쿠데타로 잘못 해석해 한국 포지션을 대폭 줄여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고 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 채권시장은 대외신인도와 관련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증시 펀더멘탈(기초체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계엄령 발표와 해제 등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라며 “채권 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수급이 결국 주식 시장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관련 수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