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발 공포가 증시를 집어삼켰다. 외국인에 이어 개인투자자(개미) 마저 팔자로 전환하며 ‘셀 코리아’ 행렬에 동참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무산되면서 여야 대치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코스피는 2360선까지 추락하며 올해 연저점을 갈아치웠다. 증시전문가들은 지수가 2200선까지 밀릴 수 있다며 사실상 연말연초 낙관적 증시 반등 기대를 포기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나흘간(4~9일) 1조 원가량 팔아치웠다. 8월부터 5개월 연속 순매도세다. 외국인은 8월부터 12월 현재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0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순매도세는 약해지고 있지만, 관망세가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한때 26조 원까지 불어났던 외국인의 올해 코스피 누적 순매수 금액은 3조7500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개미도 ‘셀 코리아’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개인은 12월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2조 원가량 순매도하고 있다. 외국인의 순매도 물량을 받아내며 4개월 연속 순매수를 나타내다 순매도로 돌아선 것이다. 개인은 탄핵 무산 이후 첫 증시거래일인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8890억 원 순매도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5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악재를 선반영해 왔지만, 전혀 에상하지 못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유입됐다”며 “이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감과 실망감, 극도로 위축된 투자심리와 수급상황으로 현재 코스피는 작은 변수에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증권가는 12월에 터진 대형 정치 악재로 코스피 저점을 낮추기에 급급하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현재 증시는 2018~2020년 미중 무역분쟁 및 코로나 펜데믹 시기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에 위치해 있다”며 저점 2250을 제시했다. NH투자증권도 코스피 하단으로 2250을 유지했다. 지수는 이미 저점을 낮추기 시작했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2372.2까지 떨어지며 올해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던 8월 블랙먼데이(2386.96)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으로 남은 15거래일 만에 저점의 저점을 거듭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무산은 오히려 증시 불확실성을 높였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탄핵 부결과 정부·여당 간 내각 구성 속 여야 대치 및 국민 저항 확대다. 이 경우 국정동력 약화는 불가피하며 지수 하향세는 장기화 될 수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대왕고래 사업,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 방산 수출 정책에 차질이 우려된다. 신한투자증권은 “연말까지 금융시장 변동성 장세 반복이 불가피하며 트리플(주식·채권·외환) 약세의 추세 전환에도 한계가 예상된다”며 코스피 2300~2600 내외 등락 전망을 예상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탄핵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치 리스크 경감으로 지수 하락세가 진정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국면 당시 증시는 불안했지만, 탄핵 가결과 동시에 안정을 찾으며 각각 코스피 연간 수익률 11%(2004년), 22%(2017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4년과 2017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었고, 국내 수출 경기도 좋았다. 윤 대통령 탄핵정국인 지금 상황과 반대되는 과거의 사례에서 희망을 엿보기 힘든 이유다.
금융당국이 잇따라 회의를 열며 시장 불안 잠재우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회의 의도가 (증시) 바닥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추가하락을 막자’이기 때문에 지수 하방을 좀 더 열어놔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고 전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2450~2500선 안착 전까지는 신규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며 “현 지수대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에는 저점 확인 과정이 험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