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는 아는데 ‘사다’는 어디?…“소외 분쟁지역에 관심을”

입력 2024-12-31 06:00 수정 2025-01-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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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송년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MSF)는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이념으로 1971년 프랑스 의사와 기자들이 설립했다.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75여 개 국가에 4000여 명의 MSF 국제구호활동가가 파견돼 있다. 현지인 직원 4만여 명까지 포함하면 국제 의료구호 비정부기구(NGO) 가운데 최대 규모다. MSF 한국사무소는 2012년 설립됐다.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가자(Gaza)’라는 말이 들리면 전 세계 누구나 전쟁 사상자를 떠올리며 슬픔을 나눈다. 반면 사다(Sa'dah), 아비에이(Abyei), 키시셰(Kishishe)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낯선 외국어로 인식된다. 생명의 가치에는 경중이 없지만 지구촌 곳곳 분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선진국이 연루된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소외된 분쟁지를 알아주는 것만으로 인권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무력행사에 따르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엠마 캠벨(Emma Campbell)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은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분쟁지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전 세계에서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지속하는 2024년 말, 본지는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 최근 캠벨 사무총장을 만나 MSF의 의료구호 활약과 한국 시민들의 기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주국립대학에서 한국 정치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캠벨 사무총장은 MSF 현장활동가로 에스와티니, 시에라리온 등을 누볐다. MSF 호주사무소 이사회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작년 8월 한국사무소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예멘·남수단·콩고 등 오랜 내전지역에 전 세계 관심 필요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올해 마무리하는 소감을 묻자 캠벨 사무총장은 “매우 유감스럽고 슬프다”고 답했다. MSF의 도움이 필요한 분쟁지가 여전히 너무 많아서다. 매일 새로운 소식이 쏟아지는 이스라엘·하마스, 우크라이나·러시아 격전지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무력 충돌이 반복되는 곳에서 사상자 발생이 끊이지 않았다. 내전이 고착화된 지역이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캠벨 사무총장은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라며 “특히 수단과 예멘 등 오랫동안 무력 충돌과 정치적 혼란을 겪는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조차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충격적인 피해 소식도 계속해서 들으면 무뎌지기 마련”이라며 “지구 반대편 분쟁지역의 사상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살아가던 존엄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내전 고착화 지역>
◇예멘: 2014년 예멘 북부 사다(Sa'dah) 지역을 거점으로 조직된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al-Houthi) 반군과 예멘 정부군 간 내전 발발. 국제연합(UN) 추정 지난해까지 내전으로 37만7000명 사망, 400만 명의 거주지 파괴.
◇남수단: 1989년 남부에서 조직된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독립 요구하며 내전 발발. 2011년 남수단 독립 후 현재까지 유전지대 아비에이(Abyei)를 둘러싼 무력 충돌 지속. UN 추정 지난해까지 난민 240만 명, 실향민 230만 명 발생.
◇콩고민주공화국: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 후 부족 간 갈등으로 1996년 1차, 1998년 2차 내전 발발. 2021년부터 투치족 반군세력 M23이 르완다와 결탁해 정부군과 교전 중. 북부 키시셰(Kishishe) 지역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 및 강간 등 전쟁범죄 발생.

후원금 17위 한국…한국인 활동가 필요한 곳 많지만, 법적 한계 가로막혀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은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분쟁지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은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분쟁지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한 해였지만, 한국 시민들의 의욕적인 모습이 캠벨 사무총장과 MSF 구성원들의 버팀목이 됐다. 한국은 개인 단위 후원자가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많다. 후원자를 위한 행사 참여율 역시 높고, 현장활동가 파견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의 의지와 전문성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캠벨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캠벨 사무총장은 “미국, 영국 등은 한 사람이 거액의 유산을 기부하거나 기업, 단체 후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개인 단위 소액 기부자가 아주 많으며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라며 “지난해 한국 기금은 약 540억 원으로, MSF 사무소가 있는 37개국 중 17위로 규모가 컸다”라고 소개했다. 특히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 활동가뿐 아니라 회계사와 물류전문가, 건축가 등의 숙련도 역시 세계적인 수준으로 뛰어나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한국인 활동가를 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후원금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인 활동가 파견 인원과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지난해 MSF 한국사무소가 파견한 한국인 활동가는 총 16명으로, 이는 아시아 출신 MSF 현장 활동가의 4%에 불과하다.

한국은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한 선교단 피랍 사건 이후 여권법상 여행금지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언론취재나 인도주의 활동가 역시 예외를 인정받기 어렵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외교부에서 여행금지 국가 입국을 허가한 언론인은 23명에 불과하다.

캠벨 사무총장은 “한국과 후원 규모가 비슷한 홍콩은 지난해 129명의 활동가를 파견했으며, 이들 중 45명은 한국인이 여행금지제도에 따라 입국할 수 없는 국가에 파견됐다”라며 “한국인 활동가들은 파견을 희망하고 있고, 이를 위해 따로 언어를 공부해오는 열정까지 보이지만 법률적으로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도 여행금지제도가 있지만, 인도주의 활동에는 유연하게 예외를 적용한다. 캠벨 사무총장은 “전 세계 MSF 지부 중 여행금지제도로 인해 활동가 파견에 제약을 받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53년 전통 안전·중립 프로토콜…“한국 시민 관심 모여 큰 변화 일으킬 것”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은 보건과 안보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한국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은 보건과 안보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한국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현장활동가의 안전은 MSF가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분야다. MSF는 53년 동안 축적한 의료 지원 경험에 기반해 안전 프로토콜을 수립했다. 활동가에게 위협이 발생하면 프로토콜에 따라 모든 네트워크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고 즉시 철수한다. 현장 투입과 동시에 분쟁 당사자 모두와 접촉하며 중립성을 유지하고자 정부의 지원도 최소화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재원의 약 90%가 제네바협약 가입국 분담금인 것과 달리 MSF의 재원은 98%가 민간 후원금이다.

캠벨 사무총장은 “국경없는의사회는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지역 당국과 조율하여 환자와 의료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한다”라며 “가자지구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하마스 민간 행정부와 이스라엘 당국 양측과 접촉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지 주민들이 MSF에 몹시 호의적이기 때문에 지역 커뮤니티가 나서서 MSF 현장활동가들을 돕고 보호해주기도 한다”라고 예를 들었다.

한국 활동가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구호활동에 나서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많다. 방구석 소시민이 당장 할 수 있는 기여가 무엇인지 묻자 캠벨 사무총장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관심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후원하지 않아도 단순히 분쟁지역의 소식을 알고만 있어 준다면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캠벨 사무총장은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분쟁지역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라며 “한국은 보건과 안보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한국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

<엠마 캠벨(Emma Campbell)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영국 리즈대학교(University of Leeds)에서 법학 및 중국어 학사,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원(SOAS)에서 아시아정치학 석사, 호주국립대학교(ANU) 아시아·태평양 단과대에서 한국 정치사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가로 에스와티니, 레바논, 튀르키예, 시에라리온에서 활동했다. 호주 소수민족공동체연맹(Federation of Ethnic Communities' Councils of Australia) 대표, 호주 스포츠위원회(Australian Sports Commission) 대정부 관계 총괄, 호주 사회복지위원회(ACT Council Of Social Service) 대표를 지냈다. 2022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호주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8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총장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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